[이달의 연극女왕/7월 김소희]‘불혹의 갈매기’ 忍苦의 무대 위로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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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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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던 연기력…호흡훈련으로 단련
연희단거리패 통해…주-조연 안가리고 출연
힘든 상황에 던져져…극복하는 것 좋아해

우리극연구소의 ‘갈매기’에서 여배우 니나 역을 맡아 ‘7월의 연극여왕’에 선정된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 미친 여인, 어린 창녀. 매 맞는 아내 등 굴곡진 삶을 사는 여인을 주로 연기하면서 ‘이윤택의 페르소나’로 불렸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순수하고 담백한 연기 변신을 보여 ‘니나의 참맛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양회성 기자
우리극연구소의 ‘갈매기’에서 여배우 니나 역을 맡아 ‘7월의 연극여왕’에 선정된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 미친 여인, 어린 창녀. 매 맞는 아내 등 굴곡진 삶을 사는 여인을 주로 연기하면서 ‘이윤택의 페르소나’로 불렸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순수하고 담백한 연기 변신을 보여 ‘니나의 참맛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양회성 기자
슬로베니아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오직 여자만이 그녀 자신(여자)인 척할 수 있다”는 묘한 말을 했다. 남자는 여자인 척할 수는 있어도 여장을 한 채 남자 행세를 할 수 없지만 여자는 남장을 한 채 다시 여자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오직 여배우만이 성차(性差)를 뛰어넘는 ‘이중적 가면 쓰기’가 가능하다는 통찰이다.

안톤 체호프 작 ‘갈매기’의 여주인공 니나에 대한 여배우들의 열망은 어쩌면 그 대척점에서 발원하는지 모른다. 여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첫사랑을 버리고 떠난 니나는 3류 배우로 전락한 채 첫사랑을 다시 만나 다음과 같은 대사를 토로한다.

“나는 점점 초라해지고 보잘것없는 여자가 되어갔고, 내 연기는 점차 거칠고 시들해졌지. 무대 위에서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서 있어야 할지 몰랐어. 목소리도 조절할 수 없었어. 자신의 연기가 엉망이라는 걸 알 때 그 기분은 모를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난 이제 기쁨과 환희를 갖고 연기하는 진짜 배우가 됐어.”

니나를 연기한다는 것은 곧 여배우로서 자기정체성을 투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나를 연기하면서 동시에 여배우로서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보인다는 뜻이다. 우리극연구소의 ‘갈매기’(연출 윤광진)에서 니나 역으로 7월의 연극여왕에 뽑힌 김소희 씨(40)는 그런 점에서 미묘한 파장과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불혹의 나이로 20대 초반의 니나 역에 도전한 점이 파장을 일으켰다면 그의 연기인생은 공명을 일으켰다.

연극평론가 김소연 씨는 “당황스러운 등장이었지만 평소의 강렬한 연기가 아니라 담백한 연기로 의미 있는 연기변신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김미혜 한양대 교수는 “자기 배역을 능수능란하게 갖고 노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한국연기예술학회 회장인 최정일 중앙대 교수는 “탁월한 언어전달력과 섬세한 내면연기력을 함께 갖춘 배우의 귀감”이라고 상찬했다. 연세대 국문과 88학번인 그는 대기만성형 배우다. 학창시절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며 제법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우연히 선 무대에서 자신의 연기가 형편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1994년 이윤택 이병훈 윤광진 씨 등의 연출가들이 배우 양성소로 세운 우리극연구소 1기생이 된다.

“당시 1기생 중 제가 제일 열등생이었죠. 발성도 모깃소리처럼 약하고 몸도 제대로 가눌 줄 모르고…. 사실 제가 ‘소리통’이 작아 배우로서 약점이 많거든요.”

그만큼 배우 김소희를 대표하는 정확한 발성과 능수능란한 화술, 빈틈없는 동선은 철저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호흡이 관건이죠. 몸을 팽팽하게 확장시키면서 온몸으로 발성하는 방법도, 몸의 움직임을 통해 무대 위의 시간을 변형시키는 방법도 호흡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워낙 늦돼서 오래 걸린 것이지 보통사람도 배우면 금방 터득할 수 있어요.”

금방이라는 게 얼마의 기간을 말하느냐고 묻자 웃으며 “5년”이라고 답했다. 하긴 그의 이력을 보면 5년이 금방일 수도 있겠다. 1998년 ‘느낌, 극락 같은’으로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꽃망울이 맺힌 그의 연기는 2004, 2005년부터 물이 올랐다. 2004년 ‘아름다운 남자’에서 열여섯 아난 역으로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 ‘원전유서’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그의 연기인생은 이윤택 씨가 창단한 연희단거리패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거의 매년 연희단거리패가 제작하는 10여 편의 연극, 뮤지컬에 주연 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한 것이 그 연기력의 거름이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는 이윤택 씨로부터 연희단거리패 대표직을 물려받아 극단의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갈매기’의 니나는 자신을 연극이라는 호수를 맴도는 갈매기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김소희라는 갈매기를 맴돌게 하는 호수는 연극일까, 연희단거리패일까.

“단연코 후자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본디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힘든 상황 속에 던져져 그걸 헤쳐 나오는 걸 좋아하는데, 연희단거리패야말로 끊임없이 그런 상황을 제게 안겨주니까요.”

이제 ‘갈매기’ 속 니나의 후속 대사를 음미해 보자.

“난 이제 정말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는 걸 믿어. 내가 여기 온 이후 난 계속해서 걷고 생각했어…난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연극이, 그것이 쓰는 것이든 연기든 중요한 건 명성이나 갈채가 아니었어. 중요한 건 바로 참아낸다는 거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신념을 갖고 어떻게 견디어 나가느냐 하는 거야.”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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