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고 통하면 기적이 일어나지만 사람하고 통하면 흥이 납니다. 교회가 자꾸 사회와 통해야지요.”
정성진 목사(55·사진)가 담임을 맡고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거룩한빛광성교회는 지역에서 사회사업을 많이 하기로 이름난 교회다. 이 교회는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강좌 150여 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 노인복지센터, 재활용품 매장 ‘천사들의 가게’ 등을 운영한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사업은 ‘한국판 그라민은행’이라고 불리는 소액대출 지원 활동이다. 그라민은행은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무함마드 유누스가 설립한 빈민구제를 위한 소액대출 전문 은행. 정 목사는 1997년 이 지역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빈민구제 활동을 벌였다. 처음에는 절대빈곤층에 소액을 무상 지원했지만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2007년부터는 저소득 여성 등 취약계층의 창업을 돕는 소액대출을 시작했다. 교회복지법인 ‘해피월드’에 들어온 후원금으로 2007∼2009년 21명에게 100만∼1000만 원씩 1억4500만 원을 지원했다. 무이자, 무담보 조건이며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희망자에 한해 연 3% 이내의 후원금을 받는다. 2009년부터는 휴면예금과 대기업 등의 출연금으로 조성한 ‘미소금융중앙재단’에서 기금을 지원받아 소상공인에게 1인당 평균 2000만 원씩을 지원하는 소액대출도 병행하고 있다. 2009∼2010년 상반기 105명에게 약 21억 원을 지원했다.
“예수 초기의 교회처럼 끊임없는 사회활동이 한국 기독교 살리는 길”
14일 오후 교회에서 만난 정 목사는 “2006년 당시 유누스가 그라민은행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빈곤 구제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사도행전 20장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출받은 이들 중 때로는 상환을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주다가 망해도 성공입니다.”
그는 1980년대 초 충북 음성군 금왕읍의 폐광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면서부터 빈곤의 문제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그곳에서 빈곤과 무지와 범죄가 한 형제라는 것을 느꼈다”며 “빈곤 해결을 위해 목사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계속 사회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가 1970, 80년대 부흥기에 신자 수를 늘리면서 교회 안으로만 들어가고 사회와 유리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내부에 안주해 비판의 대상이 됐어요.”
그는 예수 초기의 교회처럼 끊임없는 사회활동이 한국 기독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너무 사회활동에 매달려 정작 목회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선한 마음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며 “그 마음을 맡아 써주는 사람이 목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여러 사업으로 부채가 300억 원이 넘는다. 그는 “그래도 교인들이 행복해하니 별 걱정은 없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사회구제 활동 종착지는 북한 돕기다. 그는 외국 선교단체를 지원해 북한에 생리대 공장과 노인요양원을 세워 동포들을 돕고 있다. 그는 “현 남북관계상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집무실을 떠나기 전 책상 위의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이라고 쓴 편액이 눈에 띄었다. 그는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라는 뜻이라며 “교회와 사회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내 신학적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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