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책읽기]삶은 서사의 쪼가리… 쪼가리의 쪼가리…

  • 동아일보

일반적인 독법(讀法)으로 본다면 이 소설은 참 당혹스럽다. 소설의 배경, 주인공,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서사구조 어느 것 하나 뚜렷이 갖춘 게 없다. 암호 같은 문장과 문장 그 자체, 의미와 의미의 연쇄만 남아 있다. 그런데도 장편 ‘소설’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서술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서술하고 싶지 않다”로 시작되는 소설 초입의 문장들이 이 작가의 작업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시작도 끝도 없는 서사의 쪼가리다. 쪼가리의 쪼가리다. 더 이상 쪼가리가 될 수 없는 최후의 쪼가리다. 우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못한다. 우리는 부사와 형용사를 허용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문장의 조사에 불과하다.” 시적인 짧은 문장과 강렬한 이미지, 서사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던 소설가 김태용 씨의 면모가 작품 속에 유감없이 펼쳐진다.

숨김없이, 남김없이(김태용 지음·자음과모음)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