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곰삭은 메주를 장독에 옮겨서 소금물을 풀고 40여 일을 발효시킨 뒤 메주는 건져 된장을 만들고 남은 물을 푹 끓여 졸이면 붉은 기운이 도는 달달한 맛의 간장이 된다. 이 졸이는 과정을 ‘간장을 달인다’고 한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집에서 직접 간장을 달일 일은 없어졌다. 환기팬을 돌리는 것을 깜빡하고 간장을 달였다간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이웃들의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 식품 업체에서 만든 양조간장은 간장을 달이는 수고를 덜어줬다. 국이나 조림 같은 기존의 쓰임 외에도 웰빙 바람을 타고 샐러드의 드레싱 재료로 각광받고 있는 간장은 서양에서도 ‘소이 소스’라는 이름을 달고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 양념으로 환영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샘표식품의 전통요리교육공간인 ‘지미원’에 모인 11명의 남성도 ‘간장의 달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샘표식품이 주최한 ‘남편들의 명절요리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간장을 활용한 갈비찜, 궁중 떡볶이, 잡채, 산적 같은 다채로운 명절요리를 선보였다.
○ 요리하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
참가자 중 최고령인 임준식 씨(56)는 아내와 두 딸의 응원을 받으며 ‘두부 스테이크’를 준비했다. 임 씨의 아내 안경숙 씨(52)는 평소 자신이 만든 음식에 “이건 짜다, 이건 맵다”고 품평만 하던 남편이 두부 위에 올릴 채소를 무칠 간장 소스를 만들고 간을 보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남편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대회를 준비하며 함께 장을 보는데 재료의 원산지며 유통기한을 꼼꼼히 챙기는 모습도 새롭게 보이던데요?” 임 씨의 맏딸 선아 씨(27)는 “어제 아빠가 최종연습으로 만든 두부 스테이크 맛이 일품이었다”며 “명절을 앞두고 가족이 좋은 추억을 만들게 돼서 더 좋다”고 말했다.
대회 참가를 위해 부산에서 온 이재진 씨(27)는 젊은 남편답게 퓨전식 ‘꼬치 산적’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전복 내장과 발사믹 식초를 넣은 간장 소스를 발라 산적의 맛을 살렸다. 간장 소스를 숟가락으로 떠 접시 가장자리에 흩트리며 장식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심사위원 이미경 씨(한식요리연구가)는 “전복에 칼집을 넣는 기술부터 산적을 지지기에 적당한 온도로 팬을 가열하는 기술까지 초보 남편의 솜씨라고 보기 힘들 만큼 예사롭지 않다”며 혀를 내둘렀다.
요리 완성까지 주어진 시간은 60분. 마음이 급해지면서 이곳저곳에서 실수가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여보, 불 조절! 불 조절!” 하며 손사래를 치는데도 불 조절을 잘 못해 팬 위의 재료를 태우기도 하고, 눈대중으로 간을 했다가 음식이 너무 짜서 물을 넣기도 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떡갈비를 준비한 전선표 씨(35)는 집에서 달걀 프라이를 할 때 쓰는 하트 모양의 틀을 활용해서 하트 모양 떡갈비를 만들어 심사위원의 찬사를 받았다.
○ “아빠가 만든 음식이 최고”
남은 시간은 10여 분. 종료 시간을 앞두고 참석자들의 손길이 더욱 분주해졌다. 간단한 요리를 택한 참가자들이 완성된 요리를 속속 진열대 위에 올려놓자 마음이 바빠진 나머지 참가자들의 손길이 바쁘다. 조림이나 찜에 도전한 참가자들은 국물이 빨리 졸아들지 않자 애꿎은 불 탓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회장은 달달한 간장 달이는 냄새가 가득 차 아침을 거른 기자의 입 안에도 침이 고였다.
드디어 가슴 떨리는 심사시간. 3명의 심사위원이 한참을 의논한 끝에 발표한 영예의 ‘으뜸상’은 갈비찜을 출품한 김재향 씨(35)에게 돌아갔다. 그의 갈비찜은 다섯 살배기 아들 건우와 14개월 된 딸 민지가 평소 잘 먹지 않는 떡을 넣고 각종 과일을 갈아 만든 걸쭉한 양념이 특징. 비장의 무기인 매실 원액을 넣어 간장의 감칠맛을 제대로 살렸다.
김 씨는 “오랜 자취 생활로 다져진 요리 경험에다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아내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을 맡은 이홍란 지미원 원장은 “떡과 당근처럼 아이들이 잘 안 먹는 재료를 갈비찜에 넣는 등 가족을 위한 정성이 느껴졌고 명절 대표 음식인 갈비찜의 풍미를 제대로 살려 높은 점수를 줬다”고 밝혔다.
김 씨의 아내 오지숙 씨(35)와 장모 이금남 씨(60)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단다. 이 씨는 “나들이를 가면 직접 김밥을 쌀 정도로 사위가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평소에도 맛난 음식을 해줬는데 이번에 요리대회에서 1등까지 해서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등 상패를 받아든 아빠를 지켜보던 아들 건우가 한마디 거든다. “아빠가 만든 음식이 최고로 맛있어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 재료따라 요리에 간장넣는 타이밍 달라 ▼
간장의 구수하고 달콤한 향은 식욕을 자극할 뿐 아니라 원료인 콩에 단백질과 지방질, 비타민 등이 들어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다. 간장의 메티오닌 성분은 알코올과 니코틴의 해독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관을 부드럽게 하고 비타민의 체내합성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좋은 간장을 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장을 담은 용기의 라벨에 붙은 ‘TN 수치’를 확인하면 좋은 간장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TN 수치는 간장의 원료인 콩에서 나오는 단백질 중 아미노산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국제적 기준이다. 이 수치가 높은 간장은 영양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좋아서 열을 가하지 않는 샐러드의 소스나 음식을 찍어 먹는 용도로 사용하면 음식의 풍미가 살아난다. TN 값이 낮은 간장은 조림이나 볶음 등에 사용하면 좋다.
식재료에 따라 간장을 넣는 시점을 달리해야 재료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장조림처럼 조리시간이 긴 음식은 고기에 간장 맛이 잘 스며들어야 하므로 조리를 시작할 때 간장을 넣어야 하지만 무침 등은 먹기 직전에 간장을 넣는다. 특히 나물은 무칠 때 미리 간을 하면 간장에 포함된 염분으로 인해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 물기가 생기면서 맛이 떨어진다. 간장 소스를 만들 때에도 미리 만들어 두기보다는 먹기 직전에 만드는 것이 간장의 향과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발효식품인 간장은 용기 뚜껑을 열어 사용할 때마다 조금씩 발효가 진행된다. 오래 사용한 간장이 마치 젤리처럼 물컹해질 때가 있는데 이는 간장이 과다 발효됐기 때문이다. 간장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발효 속도를 늦춰 비교적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용량이 적은 간장을 사는 것도 보관이 쉽고 빨리 먹을 수 있어 과다 발효를 줄이는 방법이다.
1. 7cm×0.1cm 두께로 얇게 썬 쇠고기에 잔 칼집을 내고,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으로 양념한 뒤 찹쌀가루를 묻혀 가볍게 털어낸다. 2. 새송이 버섯은 채를 썰어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해 살짝 볶는다. 3. 깻잎, 홍고추, 대파 흰 부분을 곱게 채 썰고 무순은 깨끗이 손질해 물기를 뺀다. 4. 재 놓은 고기를 팬에 구워서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고 돌돌 만다. 5. 고기를 접시에 보기 좋게 돌려 담고 소스를 곁들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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