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말하는 동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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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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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낯선 눈빛을 보내는 건 “나 할 말 있어요”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국내외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누구나 동물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도 반려동물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지 않나요? 스스로 능력을 길러 보세요.”

활발하게 활동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히비가 쓴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책공장더불어)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동물과 대화하는 법을 정리했다. 히비는 “대화를 통해 인간과 동물, 당신과 당신의 반려동물이 더욱더 단단한 끈으로 연결됐으면 한다”면서 “끈은 대화를 통해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적었다.

동물과 대화하는 잠재력은 누구나 갖고 있다. 굉장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막연하게 느껴져서 그럴 뿐이다. 마음만 연다면, 노력만 한다면 대화법을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대화법은 사람과 동물의 유대관계를 끈끈하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단지 흥밋거리로 배워서는 안 된다.

동물과의 대화 장소는 조용한 곳이 좋다. 히비의 대화법 강의 실습 시간은 언제나 명상으로 시작한다. 마음과 머리를 고요하게 하는 준비 과정은 대화에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화는 쉬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빈 밥그릇을 쳐다보는 개를 상상하면서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하고 조용히 묻는다. 동물들이 대답하는 방식은 다 다르기 때문에 머뭇거렸다가는 놓치기 일쑤다.

음식을 주제로 한 기초대화에 성공했다면 좀 더 수준 높은 질문을 해본다. “너희 집에 대해 얘기해줄래?” “네 친구들에 대해 말해줄래?” 반복적인 연습으로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한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대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동물은 집중력 시간이 짧다는 걸 기억해라.

동물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 사람들은 가끔 낯선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동물의 눈길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동물이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낼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관련 서적으로 ‘엄마 내 맘 알지?’(루비박스)와 ‘개와 대화하는 법’(보누스)도 있다.

“인간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축복인 동물들. 우리는 그들과 얼마만큼 오래 함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해주는 그 짧은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눈길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꽃님이 알고보니…
“그래야 병든 내가 떠나도 가족등리 덜 힘들지”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를 운영하는 김보경 씨는 열일곱 살 난 개 ‘찡이’, 고양이 ‘대장’과 산다. 22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야기 도중 잠시 찡이가 자는 방문을 열어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찡아, 방에 쉬 했어? 이크, 미안미안. 문 열어 달라는 소리를 못 들었어. 삐쳤구나, 미안.”

“배고프니? 배고프다고? 밥 먹을까?” 이렇게 그는 틈만 나면 찡이와 대장에게 말을 건넨다. “혼자 문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이 아이의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구나’ ‘이건 내 마음이 아니구나’라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5년 전 김 씨는 강아지 두 마리를 각각 교통사고와 정체불명의 병으로 잃고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곁을 찡이가 지켜줬다. 그즈음 SBS ‘동물농장’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히비가 동물과 교감하는 장면을 접했다. 미국 태생의 히비는 수의간호사 출신으로 동물과 소통하는 훈련과 연습을 거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충격이었죠. 오랜 세월 같이 산 찡이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 찡이의 삶이 단순하리라는 짐작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동물에게도 넓고 깊은 마음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어요.”

그는 히비의 저서 ‘Conversations With Animals’를 미국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했다. 이 책에는 히비가 20년 동안 동물과 나눈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푸들 ‘코디’, 지긋지긋한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얼룩 고양이 ‘프랜시’, 함께 사는 고양이들에게 늘 싸움을 거는 ‘제다’…. 히비가 들려주는 동물들의 비밀스러운 속내에 김 씨는 울고 웃었다.

당시 잡지기자를 그만 두고 1인 출판사를 준비하고 있던 그는 이 책의 번역서를 첫 책으로 출간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사람들이 다 말렸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동물이랑 대화를 한다고? 점쟁이야?” “짐승 좋아하는 사람은 책 안 읽어”라는 비웃음부터 “한국 출판계에서는 반걸음만 앞서나가도 어려워”라는 걱정섞인 조언까지 쏟아졌다.

그는 “동물의 마음과 감정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직접 번역한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히비’가 2006년 출간됐다. 처음에는 대형서점의 동물 관련 서적 상품기획자(MD)들도 “그게 무슨 책이에요”라고 물었지만, 지난해 말 교보문고에서 3년 연속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작은 출판사들이 ‘꿈의 부수’라 부르는 1만 부도 찍었다. 동물과 대화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문의가 폭주해 2년 전에는 ‘동물 대화 스터디’도 열었다. 올봄에도 한 차례 더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동물에게도 깊고 다양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찡이의 마음과 생각을 더 유심히 살피게 됐고요.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라 잘 표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로 표현해요.”

그는 “사람들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선천적으로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초능력자라고 오해한다”면서 “하지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지금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3월 SBS ‘동물농장’에서 방영한 ‘동물심리 분석가 하이디의 위대한 교감’ 덕분. 포털 사이트에서 ‘하이디’로 검색하면 동영상을 담은 수많은 블로그가 나온다. 큰 인기에 SBS는 지난해 추석특집으로 이 프로그램을 재편성했다. ‘동물농장’ 측은 “하이디가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동물과 교감, 소통하면서 그들의 특성과 경험, 몸짓, 향기를 복합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늙고 병든 채 버려진 개 ‘꽃님이’ 이야기는 많은 시청자를 울렸다. 서울 올리브동물병원의 박정윤 원장은 유기견 꽃님이를 데려다 1년이 넘도록 돌봐줬다. 그러나 꽃님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박 원장은 하이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꽃님이는 하이디를 통해 ‘나를 버린 가족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늙고 병들어 가족에게 짐만 돼 버거웠다’ ‘누구와도 눈길을 마주치지 않은 것은 그래야 내가 떠나도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이디와의 교감 끝에 꽃님이는 병원 식구들과 눈을 맞췄다. 지난해 12월 28일 박 원장은 블로그에 ‘2월이면 꽃님이가 하이디 선생님을 만난지 1년이 됩니다. 제게는 꿈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이 친구와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었을까 싶어서요’라는 글을 남겼다.

‘동물농장’의 김기슭 PD는 “하이디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시청자들의 정서적 갈증을 해소시켰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프로그램이 시작한 8년 전만 해도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귀여운 동물 ‘펫’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는 개의 희로애락까지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하이디가 전파를 탄 뒤 ‘동물농장’의 제작방향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이상행동을 하는 동물의 경우, 행동교정이나 훈련을 통해 그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여겼다. 이제는 ‘왜 그런 행동을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몸이 불편해서 일까?’ ‘마음이 상했나?’ 김 PD는 “동물의 생각을 알려달라는 시청자 제보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국내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박민철 씨를 찾았다. 기자와 함께 사는 개의 건강, 기분 등에 대해 교감해 달라고 의뢰했다. 비용은 10만 원. 점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 씨에게 닷새 만에 연락이 왔다. 먼저 전화 상담으로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해준 뒤 다시 e메일로 상세한 내용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잘 맞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e메일을 찬찬히 읽어보니 알쏭달쏭하기도 했다.

박 씨는 “의뢰인의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검색한 덕분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질문을 보고 대충 때려 맞힌다는 의혹이 있다는 걸 잘 안다. 나는 초능력자도 사기꾼도 아니다. 동물과 대화하기 위해 부단한 훈련을 한 사람일 뿐”이라면서 “누구나 꾸준히 훈련하면 나보다 훨씬 더 동물과 잘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반려동물을 말 그대로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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