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조카들의 블록과 작은 공들이 널린 먼지투성이의 좁은 집.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집이 덜컥거릴 만큼 낡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주택에서 가족들과 부대끼며 13년 넘게 글을 써 온 소설가가 있다. ‘풍선을 샀어’ ‘혀’ 등을 펴낸 소설가 조경란 씨다.
한때 마음의 ‘페스트’라고 할 만한 우울증에 빠져 폐쇄공포증, 알코올의존증, 대인공포증에 시달렸던 작가도 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심리, 신화, 정신분석 등의 관련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내면의 병을 치유해가는 지난한 과정을 승화해 장편 ‘페스트’를 냈다. 소설가 최수철 씨다.
독자에게 익숙한 작가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나 문학적 공간, 내밀한 가족사 개인사를 다룬 자전소설을 발표했다. 월간 ‘현대문학’은 1월호에 ‘신년자전소설 특집’을 마련하고 소설가 박상륭, 이동하, 윤후명, 김채원, 양귀자, 이승우, 최수철, 김인숙, 조경란 씨의 자전소설을 수록했다.
‘봉천동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조경란 씨는 그의 문학적 삶의 터전인 봉천동을 배경으로 한 ‘봉천동의 유령’을 선보였다. 작가가 그의 ‘서정시대’를 보냈던 정감 어린 이곳은 최근 이미지 쇄신이란 이유로 이름이 ‘중앙동’으로 바뀌었다. 조 씨는 이에 대한 서운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삶이 가장 뜨겁게 지나간 곳. 이것이 내가 지금껏 글을 써왔으며 현재도 살고 있으나 이제는 쓸 수 없게 된 주소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 10동 41-762 4통 2반.”
7년 만에 처음으로 신작소설을 발표한 소설가 양귀자 씨는 ‘단절을 잇다’에서 셋째 오빠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그를 사로잡았던 상실감과 죄책감을 떨쳐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오빠는 ‘예술’이란 운명에 투신하다 결국 서른이 되기도 전 자살로 생을 끝냈다.
“그러므로 오빠는 기어이 살아남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굴욕과 배신과 분노로 점철된 시간을 견디는 것이 곧 ‘예술적’ 인간의 길임을 알았을 것이다. 천재의 자리도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오빠가 알았어야 했다.”
소설가 김인숙 씨의 ‘해삼’은 작가 자신이 주변 인물이자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독특한 자전소설이다. 하숙집 주인의 불행한 가족 내력을 다루고 있는 소설로, 여기 작가를 꿈꾸는 하숙생이 등장한다. 가난이란 굴레와 상처 속에서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통해 작가는 소설 책 한 권으론 감히 담을 수 없는 인생과 문학적 글쓰기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이 밖에 노모의 임종 후 유골을 흘러 보내기 위해 찾은 고향 바닷가에서 지난 삶을 반추하는 소설가 윤후명 씨의 ‘모래의 시’ 등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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