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테마 에세이]목도리<2>안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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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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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에 잠자는 ‘겨울’

일러스트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 김수진 기자
기온이 뚝 떨어지자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갑작스레 늘어났다. 그들을 보면 푸근한 느낌이 절로 든다. 겨울철 의상소품 가운데 목도리만큼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드물다. 허리 아래 놓여서 눈에 덜 뜨이는 장갑에 비하면 눈높이에서 목을 감싸고, 또 아래로 드리운 목도리는 얼마나 시선을 집중시키는가. 그들을 따라서 두르고픈 마음이 금세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목도리를 두르는 일이 거의 없다. 추위를 안 타는 것은 아니지만 목덜미가 심하게 시리지 않아 몹시 추울 때가 아니면 들고 나서지 않는다. 목이 짧은 탓인지 열이 나고 답답하여 목도리를 오래 두르지 못한다. 아내는 목도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체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목도리를 두른 모습이 멋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느껴져서다. 남에게는 멋진 소품이 내게는 하나마나거나 한 술 더 떠 어울리지 않는 꼴을 연출하니 거추장스러운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제각각 사연을 가진 목도리가 옷장 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겨울이면 서랍과 옷걸이 사이를 굴러다니다 다시 옷장으로 들어간다.

어른들에게 아주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는 광목 따위의 천으로 목도리를 해 둘렀으므로 그다지 따뜻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날씨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고, 좋은 옷도 없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릴 만큼 심하게 추위를 타는 아주머니들 중에는 목도리 안에 빨간 고추나 검은 숯을 넣어 목에 두르기도 했다. 그러면 열이 한결 많이 나고 온기가 갈무리되었다고 했다. 목도리 속에 고추와 숯을 넣는다는 발상이 너무도 엉뚱하고 낯설어 거짓말처럼 들렸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멋스러움이란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런 내가 몇 해 전 목도리를 하려는 마음을 크게 낸 적이 있다. 겨울철 로마를 여행할 때였다. 이상하게도 목도리로 감싸고 다니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추위를 막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멋을 내기 위한 패션의 하나라고 짐작했다.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따뜻한 느낌도 들어서 따라서 두르고 다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답답증을 견딜 수 없어 몇 번 들고 다니다가 결국 던져버렸다. 목도리는 내게 언제나 ‘흔들리는 마음’이다. 현대적 멋과 근대적 실용의 가치가 교차하는…. 아득한 옛날의 투박한 목도리를 생각하면, 옷장 속에 목도리를 묵혀두는 것이 그저 미안하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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