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같은 언어유희…오은 씨 첫 시집 ‘호텔 타셀의…’

  • 입력 2009년 3월 12일 02시 59분


원대연 기자
원대연 기자
“카사블랑 카(car)나 알래스 카보다는 니스 칠이 되어 있는 스리랑 카를 추천한다 스리랑 카를 타고 오슬 로(path)를 따라가다 보면 암스테르 담(fence)이 나온다 거기서 이사 벨(bell)을 누르면 십중팔구 세 명의 브레 멘(men)이 나올 것이다…”(‘말놀이 애드리브’)

최근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민음사)을 낸 시인 오은 씨(27·사진)의 수록작 중 하나로 경쾌한 ‘언어유희의 미학’이 돋보인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그는 “재수시절 끼적여 둔 시들을 형이 문예지에 투고해서 스무 살 때 덜컥 등단하게 됐다”며 “8년 만의 첫 시집인 만큼 시는 현상의 미학적 표현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시에 ‘놀이’를 개입시키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한국 시에서 등한시했던 언어의 유사성이나 차이에서 오는 리듬감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외국어를 음차하거나 한국어를 외국어처럼 낯설게 하기도 하며 때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숫자·기호 등을 끌어오기도 한다. 수수께끼 같은 언어유희가 빚어낸 블랙유머 속에는 사회와 문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뚜렷하다.

수염이 자라는 속도, 백혈구의 수치, 문을 미는 압력의 크기까지 숫자·기호로 풀어내 감정이나 가치까지 숫자로 환원하는 세상을 풍자하거나(‘구체적인 밤’) 백화점을 신전(神殿)화한 이들을 통해 소비중심주의적인 사회의 병폐를 극화한다(‘순례자들’). 표제작에서는 ‘늙은 돼지들’로 지칭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도 뚜렷하다. 물론 화자(연소자) 자신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차라리 비틀즈와 라디오 헤드의 차이예요. 내일을 계산하기도 바쁜데 어제(yesterday)를 노래하는 건 시간 낭비죠 차라리 특별해지고 싶다(I wish I was special)고 소리치는 게 훨씬 쿨해요 그러나 인정 하겠어요 우리는 모두 겁쟁이에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을 때만 미칠 수 있지요.”(‘세대차이’)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세대간의 갈등, 디지털시대의 허구 등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전공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시인도 결국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시 안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와 미술, 문화콘텐츠와 웹 서비스 등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관련 산문집 출간도 준비 중이다.

그는 “유머를 잃지 말자’가 삶의 신조이자 시 쓰기의 철칙인 만큼 훈계적 어조의 무겁고 진지한 비판은 일부러 피했다”며 “독자들이 이 시집을 피식피식 웃으며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