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44>

  • 입력 2009년 3월 8일 16시 14분


제10장 검은 팔

44회

"완전히 폭삭 내려앉았네. 대체 어떤 망할 놈들이 이런 짓을……."

뒷자리에 앉은 앨리스가 테러 현장을 실시간 영상으로 확인하며 혀를 차댔다. 먼지 자욱한 회오리바람이 사이보그 거리를 휘감았다. 화면 하단으로 사망자 및 부상자 사진이 지나가고 있었다.

"뻔하지. <보노보> 개국 때부터 예고된 테러였어."

운전석의 지병식이 볼에 바람을 잔뜩 넣으며 답했다. 조수석의 강창수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은검산?"

앨리스가 답답한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아직입니다. 연락불통이에요. 테러 때문에 특별시 전체가 난린데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창수가 새우 눈을 번뜩이며 병식의 주장을 곱씹었다.

"자연인 그룹 짓이라고?"

"아무렴. 그치들 아니면 누가 사이보그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겠어? 크나큰 재앙이 닥칠 거라고…… 누구였더라? 그래 손미주! 그 그룹 리더 손미주가 테러가 일어난 시각에 좌담회에 출연해서 떠들었다며?"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에이, 말도 안 돼. 막연하게 크나큰 재앙 운운한 건 부엉이 빌딩과 방송국의 동시 폭파 자체를 몰랐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바로 그 좌담회를 진행하던 스튜디오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병식이 복어처럼 바람을 볼에 잔뜩 넣었다가 뻐금뻐금 뺐다.

"그걸 노렸을지도 몰라. 허허실실! 앞에서는 점잖게 경고만 하고 또 자신들도 당하는 척 알리바이를 만들면서 뒤로는 끔찍한 일을 꾸민 게지."

창수가 받아쳤다.

"호오 대단하시군! 그게 정말 맞아떨어지려면 아예 방송국을 내려앉히는 게 낫지 않았겠어? 홀로그램이니 리더인 손미주는 어차피 무사한 게고……."

"그…… 그야……."

"잠깐 저거…… 저거 은검사님 아닙니까?"

이마에 붕대를 칭칭 감은 사내가 붕괴된 부엉이 빌딩 콘크리트 잔해를 뒤지고 있었다. 정말 석범이었다.

"뭐야? 그럼 은검사가 테러 현장에 있었단 말이야? 지난 밤 혼자 빠져나가더니 부엉이 빌딩에 갔던 게군. 많이 다쳤나본데…… 머리에 저 피 좀……."

앨리스가 병식의 말을 잘랐다.

"뭐합니까. 빨리 밟으십시오."

창수가 속도를 높였다. 벌써 규정 속도를 넘어섰지만 보안청 특수대 소속 차량은 단속 대상이 아니었다.

차에서 내린 앨리스가 황급히 석범을 향해 달려갔다. 대형 조명이 해처럼 높이 떠서 사건 현장을 훤하게 밝혔다. 석범은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잔해를 파헤치는 중이었다.

"검사님!"

앨리스가 불렀지만 석범은 돌아보지 않았다.

"검사님! 접니다, 남형사!"

그녀가 팔꿈치를 붙들었다. 석범은 강하게 뿌리친 후 무거운 철골을 덜어내느라 낑낑댔다.

"예서 뭣하시는 거예요?"

앨리스가 팔목을 더 강하게 붙들었다. 석범이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짙은 먼지와 땀과 검붉은 녹으로 뒤범벅이었다.

"부엉이 빌딩 옥탑방에…… 서사라가 살았대."

"서사라?"

"'바디 바자르'의 검은 무희 말이야."

"아아…… 사이보그 골목에서 검사님을 구한 생명의 은인! 근데요? 혹시 빌딩이 무너질 때 금붕어 문신도 깔렸습니까?"

"아직 몰라. 노민선 박사랑 '바디 바자르'를 나갔는데…… 미행했지만 놓쳤거든……."

"노민선은 또 누굽니까?"

"뇌 과학자야. 글라슈트 팀원이고."

"글라슈트? 아, 그 배틀원에 참가하는 격투 로봇 말입니까? 뇌 과학자가 왜 글라슈트 팀원이죠? 그리고 그녀는 왜 서사라와 함께 나갔습니까?"

"노민선도 글라슈트 팀원이야."

앨리스는 석범이 이곳에 있는 이유도, 또 그가 불러대는 여자들과 석범의 관계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검사님이 그녀들을 왜 미행했습니까?"

"그건……몰라!"

석범이 화를 내며 아예 앨리스를 등졌다.

"이게 뭡니까?"

뒤따라온 병식이 무릎에서 잘려나간 기계다리를 들고 좌우로 흔들어댔다.

"거기 놔요!"

석범의 고함소리에 놀란 병식이 기계다리를 떨어뜨렸다. 석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를 기세였다.

"음…… 아!"

세 사람의 시선이 한 순간에 소리가 흘러나온 잔해 더미 아래로 향했다. 석범이 조심조심 콘크리트 조각을 하나 둘 셋 덜어냈다. 앨리스와 병식도 그를 도왔다.

"어맛!"

엘리스가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으며 소리쳤다.

검은 팔이 불쑥 솟아올랐던 것이다.

깃발처럼 나부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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