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차갑다지만 온정은 더 활활”

  • 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0분


희귀질환인 베체트병을 앓아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에서 자선냄비를 지키고 있는 구세군 사관 한세종 씨(왼쪽 뒤)와 부인 김옥영 씨. 23일 경기 안성시 대천동에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안성=김재명 기자
희귀질환인 베체트병을 앓아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에서 자선냄비를 지키고 있는 구세군 사관 한세종 씨(왼쪽 뒤)와 부인 김옥영 씨. 23일 경기 안성시 대천동에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안성=김재명 기자
23일 경기 안성시 금석동 구세군 안성요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한세종 김옥영 사관 부부.
23일 경기 안성시 금석동 구세군 안성요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한세종 김옥영 사관 부부.
《“사랑의 마음을 전하세요.”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 오후 경기 안성시 광신극장 앞 구세군 자선냄비.

뎅그렁 뎅그렁 하는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세군 남안성교회 한세종(43) 김옥영(40) 사관 부부는 2001년부터 8년째 12월이면 이곳에서 자선냄비를 지키고 있다.

“올해 경기가 나빠 걱정했지만 모금액은 지난해보다 10% 정도 늘 것 같습니다.

참 묘한 것이 날씨가 춥고 경기가 어려울수록 자선냄비로 향하는 손길이 많아집니다.”(한 사관)》

희귀병에 한쪽 눈 잃고 자선냄비 지키는 구세군 한세종-김옥영 사관 부부

○ 남편의 종소리

김 사관은 “오히려 날씨가 따뜻하면 오늘 모금이 어렵겠다며 걱정한다”면서 힘차게 종을 울리는 남편의 오른손을 힐금힐금 바라본다. 남편의 오른손에는 철심이 박혀 있다. 2년 전 손목 관절의 작은 뼈 5개를 제거하고 대신 골반의 뼈를 이식한 것.

남편은 1998년 11월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생기는 희귀질환인 베체트병 판정을 받은 뒤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이 병은 한국과 중국, 중앙아시아 지역 등에서 발생해 ‘실크로드병’이라고 불리는데 피부와 각종 점막에 이상을 일으켜 심한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급속하게 시력이 나빠진 남편은 원인을 모른 채 안과 치료만 받다 실명했고 이후 손목 관절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수술 뒤 남편은 손가락에 힘이 없어 악수나 숟가락질이 힘들어요. 그런데 저렇게 세게 종을 울리니 가슴이 철렁하죠…. 붕대라도 감고 있어야 악수를 거절해도 오해를 사지 않는데 통 말을 듣지 않아요.”

김 사관은 “남편이 평소 아프다고 내색하지 않는 편인 데다 갑작스럽게 실명을 해 충격이 컸다”며 “명색이 목회자인데 처음에는 눈물도 기도도 안 나오더라”고 덧붙였다.

○ 아내의 목소리

한 사관은 1991년 김 사관과 결혼한 후 2년 뒤 구세군 규정에 따라 경기 과천시의 구세군사관학교에 함께 입교했다.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던 부부는 구세군 여주교회를 거쳐 경기 과천시 노인요양원과 부산 에이즈센터에서 거동이 어려운 노인과 에이즈 환자를 돌봤다.

2001년 안성으로 전근해온 부부는 현재 치매와 뇌중풍(뇌졸중)에 걸린 노인들을 돌보는 ‘평화의 마을’(www.sanpeace.net)과 구세군 안성요양원(031-671-5473)을 운영하고 있다.

“베체트병 판정을 받고 실명했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남은 한쪽 눈마저 시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아플 때는 손목을 자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하나님을 위해 평생 일하고 싶은데 왜 이러십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한 사관)

하지만 그의 곁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아내, 두 자녀가 있었다.

아내는 육체적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에게 “우리는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밖에 없다”고 위로했다.

한 사관은 지난 10년간 병과 싸우면서 매일 새 삶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병과 조금 친해진 것 같아요. 기도 내용도 바뀌었죠. 직접 아파 보니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고통을 제대로 알 수 있더군요. 65세 정년 때까지 제발 한쪽 눈만은 꼭 지켜줘 열심히 일하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습니다.”(한 사관)

“남편 일 욕심이 너무 많은 게 걱정이죠. 기도하러 가서 주님께서 ‘뭐 하다 왔니’ 하고 물으면 ‘일하다 왔다’고 대답하려고 작정한 것 같아요.(웃음)”(김 사관)

안성=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동아닷컴 박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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