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약간은 새침한, 그렇지만 온몸에 봄빛을 머금은 여자. 재수생 신야는 오늘도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녀의 이름은 스오 구미코. 나이는 스물다섯쯤? 신야를 어린애 취급하면서도 다가오는 걸 막진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를 어둠과 화분. 그녀는 왜 그렇게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나팔꽃 화분들에 집착할까.(표제작 ‘열여덟의 여름’)
네 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열여덟의 여름’은 서로 다른 얘기지만 공통점이 많다. 모두 책과 관련된 직업이나 배경이 나온다. 야릇한 연애감정이 묻어나면서도 언제나 가족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꼭 ‘식물’이 등장한다.
표제작 ‘열여덟의 여름’의 나팔꽃처럼 금목서(‘자그마한 기적’) 헬리오트로프(‘형의 순정’) 협죽도(‘이노센트 데이즈’)는 각 소설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열쇠다. 스오가 나팔꽃을 키운 이유나 협죽도의 쓰임새를 눈치 채는 순간 이야기는 묘한 분위기로 뒤바뀐다. 선잠에 들었다 막 깨어난 몽롱한 기분처럼.
‘열여덟의 여름’은 희한한 소설이다. 주위 어디에나 있음직한 인물이 등장하고 마지막 단편 ‘이노센트 데이즈’를 빼면 사건도 대수로울 것 없다. 연애소설 분위기가 물씬한데, 뒤통수―세지 않은 강도로―를 치는 미스터리. 굳이 이름 짓자면 ‘생활 추리소설’쯤 된다. 잔잔하지만 격정적인 꽃과 사랑의 향기가 넘실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