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팔꽃처럼 휘감아 컸던 열여덟, 그 여름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열여덟의 여름/마쓰하라 유리 지음·이수미 옮김/328쪽·1만 원·소담출판사

약간은 새침한, 그렇지만 온몸에 봄빛을 머금은 여자. 재수생 신야는 오늘도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녀의 이름은 스오 구미코. 나이는 스물다섯쯤? 신야를 어린애 취급하면서도 다가오는 걸 막진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를 어둠과 화분. 그녀는 왜 그렇게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나팔꽃 화분들에 집착할까.(표제작 ‘열여덟의 여름’)

네 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열여덟의 여름’은 서로 다른 얘기지만 공통점이 많다. 모두 책과 관련된 직업이나 배경이 나온다. 야릇한 연애감정이 묻어나면서도 언제나 가족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꼭 ‘식물’이 등장한다.

표제작 ‘열여덟의 여름’의 나팔꽃처럼 금목서(‘자그마한 기적’) 헬리오트로프(‘형의 순정’) 협죽도(‘이노센트 데이즈’)는 각 소설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열쇠다. 스오가 나팔꽃을 키운 이유나 협죽도의 쓰임새를 눈치 채는 순간 이야기는 묘한 분위기로 뒤바뀐다. 선잠에 들었다 막 깨어난 몽롱한 기분처럼.

‘열여덟의 여름’은 희한한 소설이다. 주위 어디에나 있음직한 인물이 등장하고 마지막 단편 ‘이노센트 데이즈’를 빼면 사건도 대수로울 것 없다. 연애소설 분위기가 물씬한데, 뒤통수―세지 않은 강도로―를 치는 미스터리. 굳이 이름 짓자면 ‘생활 추리소설’쯤 된다. 잔잔하지만 격정적인 꽃과 사랑의 향기가 넘실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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