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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6월 16일 2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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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국제 비보이 대회'에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랐다. 후배들의 몸동작 하나하나에 비트박스 추임새를 넣으며 격려하던 우 씨는 최종 우승팀을 발표한 뒤 "배틀에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린 충분히 즐기지 않았느냐"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2007년 1월 14일 결혼한 지 6개월 밖에 안 된 우 씨는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가슴은 으스러지듯 아팠지만 다리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부산 공연을 마치고 상경하다 차가 전복되면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한국 첫 비보이 팀 'NY크루'의 창립멤버이자 각종 세계 비보이대회를 휩쓸며 힙합댄서로 명성을 날리던 우 씨는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갈비뼈가 으스러져 폐가 찢어지고 척추가 어긋나 최소 1년은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우 씨는 8개월 만에 퇴원했다.
그가 찾은 새 길은 비보이 배틀 전문 MC.
일반 사회자와 달리 우 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보이 댄서들의 치열한 경합을 생생히 중계했다. 화려한 율동 못지않게 유려한 입담을 인정받은 그는 각종 대회에서 'MC 섭외 0순위'로 꼽히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우 씨의 힘겨운 재활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된 건 아내 김성희(30) 씨였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을 위해 김 씨는 강해지는 법을 배웠다.
김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루도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지만 남편 앞에서 내가 무너지면 도무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같은 경험을 나눠 가진 가수 강원래, 김송 씨 부부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 씨와 여러 차례 작업을 함께 했던 절친한 동료 댄서 김송 씨는 강 씨와 함께 자주 문병을 왔다.
강 씨는 우 씨에게 하반신 불구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는 가족들을 대신해 "이제 걸을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그 다음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우 씨는 서럽고 분했지만 자신을 일으켜 세운 건 강 씨의 냉정한 충고였다고 말했다.
"한 순간에 불구가 된 사람은 다시 걸을 수 있을 거란 부질없는 희망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 받을 생각만 해요. 그러면 끝내 사회로 돌아올 수 없죠. 나는 이제 못 걷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난 뒤에 새 길이 보였어요."
우 씨는 1일 '2008 국제비보이 배틀' 진행을 맡으며 국제무대 사회자로 데뷔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혀올 정도로 몸이 근질거려요. 그래도 심장은 그들과 함께 뛰고 있음을 느낍니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