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후대 이르러 변모”

  • 입력 2008년 6월 2일 03시 01분


고대선박 전문가 이원식 씨 “임진왜란 당시 2층 → 18세기 3층”

“거북선은 임진왜란 때인 1592년 2층으로 제작됐다가 20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3층으로 변해 갔다.”

고대 선박 전문가인 이원식 원인고대선박연구소장이 1일 거북선 내부 구조에 관해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그동안 거북선의 내부가 2층인지 3층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2층에서 3층으로 바뀌었다는 견해는 처음 제기된 것이다.

특히 경남도가 임진왜란 거북선을 3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한 시점이어서 거북선 내부 구조를 놓고 다시 한 번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거북선 형태는 ‘난중일기’ 등 충무공의 글을 모은 ‘이충무공전서’(1795년)에 나오는 간략한 그림 외에 구체적인 사료가 없어 2층인지 3층인지 단정하기 어려웠다.

2층설은 선실과 전투 공간 등 2개 층으로 되어 있다는 견해. 내부의 1층이 선실이고 2층이 노 젓는 군사와 포수의 전투 공간이라는 것이다.

3층설은 노 젓는 군사와 포수를 한 개 층에 배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에서 출발한다. 2층의 노 젓는 군사 공간, 3층의 포수 공간으로 분리돼 있다는 것이다.

경남도의 계획은 3층설을 따른 것. 경남도 이순신프로젝트 역사고증자문위원회 측은 “2층 구조라면 2층에서 노 젓는 군사, 사수, 포수가 함께 활동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전투 기능이 취약해진다”며 “1592년 거북선은 선실인 1층, 노 젓는 군사와 활 쏘는 사수의 전투 장소인 2층, 포수의 전투 장소인 3층으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이에 대해 “자문위원회가 18세기 기록 등을 바탕으로 1592년 거북선의 형태를 단정했다”며 “충무공의 글과 후대의 관련 자료를 보면 18세기에 제작된 거북선은 3층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제작된 거북선은 2층”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 중 하나는 1592년 충무공 이순신의 장계(전쟁보고서) 등에 나오는 ‘거북선 등판에 창을 꽂았다’는 기록이다.

이 소장은 “3층설에 따르면 거북선 등판의 바로 아래 공간이 3층인데, 이 공간은 한옥 대들보 위처럼 좁은 데다 대들보에 마루를 깔지 않는 것처럼 갑판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독립된 층으로 볼 수 없다”며 “또한 이곳은 창칼을 꽂아 소총수나 포수가 활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박문수(1691∼1756)의 지방 순찰 기록 등에 거북선의 모습이 변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며 “200년 세월 동안 거북선의 형태가 변한 점을 고려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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