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아, 우리가 꼭 고쳐줄게”

  • 입력 2008년 2월 16일 02시 57분


어린이들도 안타까운 추모 행렬

“사람 안 다쳤으니 복원하면 되지” 용의자 현장검증

경찰, KT텔레캅 압수수색… 경보 11분 후 출동 확인

숭례문 방화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5일 숭례문의 무인경비를 담당했던 KT텔레캅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이날 오후 2시 15분경 서울 구로구 구로동 KT텔레캅 본사 6층 고객서비스센터를 압수수색한 경찰은 “이번 방화와 관련한 KT텔레캅의 늑장 대응 여부 및 숭례문 경비업무의 계약 체결 과정과 관련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KT텔레캅은 화재가 발생한 10일 숭례문에 설치된 무인경보기가 울린 지 11분이 지난 오후 8시 58분경 직원들을 현장에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KT텔레캅 측으로부터 ‘기계의 정상작동에 대한 관리감독을 실시한 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경비 시스템을 규정대로 점검해 왔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KT텔레캅은 숭례문에 적외선감지기 12대와 폐쇄회로(CC)TV 4대를 설치하고 서울 중구 직원들이 근무하지 않는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숭례문 무인경비를 맡아 왔다.

중구청은 “지난달 31일 적외선감지기를 수리했다는 보고를 KT텔레캅에서 받고도 더 확인하지 않고 이달 1일부터 경비시스템을 작동시키도록 했다”며 관리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KT텔레캅의 출동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중구청이 지난달 23일 실시한 모의훈련에서도 경비원들은 경비업법이 규정한 출동시한(25분)을 2분 넘겨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또 이날 숭례문 방화현장에서 현장검증을 했다.

회색 모자와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현장검증을 한 용의자 채모(70) 씨는 “나 하나 때문에 (숭례문이) 없어져 버렸으니 기분이 안 좋다”면서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도 숭례문에는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계속됐다. 화재 현장에 마련된 분향소 옆 간이 게시판에는 국보 1호의 소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글들이 가득했다.

한 초등학생은 삐뚤삐뚤한 글씨로 “남대문아 안녕? 난 수빈이라고 해. 너의 몸에 불이 붙었을 때 얼마나 뜨거웠니? 우리가 너의 아픈 몸을 고쳐줄게”라고 적어 놓았다. 현장 수습이 본격화되면서 철저한 복원을 염원하는 메시지도 많았다.

임정현 씨는 “옷깃이 스치기도 황망한 몸, 그 가슴에 굴착기가 웬일입니까”라며 불에 탄 잔해의 신중한 수습을 당부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영상 취재 : 전영한 기자

▼문화재청 “부주의로 일부 부재 섣불리 처리”

“시민들 볼 수 있게 가림막 철거할 것”▼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 현장을 둘러싼 가림막을 철거하고 복원 공사를 위한 가설 덧집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시민들이 복원 과정을 참관할 수 있도록 가설 덧집에 관람 통로를 만들거나 투명창을 설치할 계획이다.

문화재위원회 박언곤 건축문화재분과 위원장은 숭례문 복원 현장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현 가림막은 임시 안전장치이기 때문에 가설 덧집을 설치한 뒤 가림막을 철거하고 개방형 낮은 울타리를 설치할 것”이라며 “가설 덧집을 설치하는 데는 3개월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숭례문 부재(部材)는 보관 장소를 확보하는 대로 옮길 계획이며 재활용, 보존용, 폐기용으로 구분한 뒤 보존용은 일반에 공개해 교육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일부 부재를 서울 은평구 수색동 폐기물업체로 반출했다는 지적에 대해 “기와 조각 등을 재활용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반출했고 불에 탄 부재가 작업 인부들의 부주의로 섣불리 처리됐다”며 문제를 인정했다.

화재 이후 현장에 있었던 문화재청 직원이나 문화재위원이 부재 반출 사실을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하지 못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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