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덧없어라,아름다운 청춘이여…‘아름다운 여름’

  • 입력 2008년 1월 19일 03시 03분


◇아름다운 여름(전 2권)/체사레 파베세 지음·김효정 옮김/216쪽(1권), 336쪽(2권)·9800원(1권), 2권(8500원)·청미래

체사레 파베세(1908∼1950)라는 이름은 우리 독자들에게 낯설다. 두어 권의 시집과 소설이 번역됐고, 2006년 베니스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그들의 이런 만남들’이 파베세의 시 ‘레우코와의 대화’를 영화화한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정도다. 이탈리아 현대소설이 많이 소개되지 않는 이유도 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이 이탈리아 소설가의 이름은 대단히 묵직하다. 그는 현실도피적인 경향에 반발한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문학의 대표로 꼽히는 작가다.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한 직후 42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름다운 여름’은 그 스트레가상 수상작이다. 3부작 중 1, 2부가 실린 상권이 앞서 나온 데 이어 3부가 실린 하권이 출간됐다. 부마다 다른 주인공의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세 이야기는 일관된 주제를 말한다.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동경’이다.

제1부 ‘아름다운 여름’은 열일곱 살의 양장점 직원 지니아가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늘 파티가 있었다. 집을 나와 길을 건너기만 하면 금세 미친 듯이 놀 수 있었다. 특히 밤이면 모든 것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가면서도 또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랐을 정도였다. 불이 나거나 집에 동생이 태어나거나 혹은 갑자기 날이 밝아서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오기를, 그리하여 계속 걷고 또 걸어서 초원까지, 언덕 너머까지 갈 수 있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삶에 대한 명랑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지니아의 심정이 너무나 잘 드러난 문장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것이 끝장나 버렸다”고 하는 지니아의 한탄으로 끝난다. 순수했던 소녀가 동네의 원숙한 모델 아멜리아를 통해 성(性)과 고독과 세계의 허위를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생애 아름다웠던 여름은 지나가 버린 때다.

삶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하는 세 남자 대학생의 이야기가 담긴 제2부 ‘언덕 위의 악마’의 배경도 여름이다. 청춘이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은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다. 가을에게 점차 자리를 내주는 여름의 아름답고도 쓸쓸한 자연풍광과 더불어 저물어 가는 젊은 날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온다. 여기에 3부 ‘고독한 여자들’에 이르면 이미 청춘을 지난 패션 디자이너 클렐리아의 고독과 체념이 소설의 내용이다.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살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 비참함, 무기력, 하찮음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라고 파베세는 일찍이 허무감 짙은 발언을 했다. 작가가 본 것은 격정에 뒤따르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서툴렀지만 어느 때보다 빛나고 생기 있었던 시간을, 그 시간이 지난 뒤에 바라보게 함으로써 작가는 ‘더는 아름답지 않은 현재’를 환기시킨다.

가벼운 트렌디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는 낯설고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듯싶다. 무게감 있는 주제의식이 실린 정교하고 유려한 문장 사이사이에서 더께더께 쌓인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원제 ‘La Bella Estate’(1949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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