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초단 키운 8할은 공부 또 공부”

  • 입력 2007년 11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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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1년도 안 된 한상훈 초단의 돌풍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는 최근 초단으로선 처음으로 세계대회인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 올라 파란을 일으켰다. 주위에선 철저한 자기 관리와 목표를 향해 뛰는 집념이 좋은 성적의 밑거름이라고 평한다. 연합뉴스
입단 1년도 안 된 한상훈 초단의 돌풍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는 최근 초단으로선 처음으로 세계대회인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 올라 파란을 일으켰다. 주위에선 철저한 자기 관리와 목표를 향해 뛰는 집념이 좋은 성적의 밑거름이라고 평한다. 연합뉴스
스승 등 주변인물들이 말하는 ‘한상훈 돌풍’

빈틈없는 자기관리 이창호 9단에 견줄만

끝내기 수준급… 기세 탈때 더 독하게 덤벼

왕위전 도전자 결정전, 삼성화재배 8강,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진출.

이것만 보면 정상급 프로기사의 성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성적은 입단 1년도 안 된 한상훈(19) 초단의 올해 기록이다. 그는 올해 이세돌 9단과 함께 가장 화제를 모은 기사다. 지난해 말 한국기원 연구생 나이 제한(만 18세)에 걸려 퇴출당할 위기에 놓였다가 어렵사리 입단한 그가 입단하자마자 놀라운 비상을 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주변 인물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봤다.

▽스승 김원 7단=한 초단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국내 3대 바둑 도장의 하나인 김원 도장을 찾았다. 동네 바둑학원에서 잘 둔다는 추천 케이스로 들어왔지만 기존 도장 멤버보다 실력이 훨씬 뒤졌다.

“바둑이 약해 다른 아이와 대국을 시키지 않고 혼자 공부를 하게 했다. 그런데 바둑을 못 두게 한다고 싫증 내지 않고 몇 달간 묵묵히 공부를 했다. ‘이 아이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초단은 중학생이 되면서 실력이 급상승해 한국기원 연구생의 입단대회 본선멤버에 끼게 됐다. 그러나 열댓 번에 걸친 입단 도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 초단이 입단대회에서 입단 직전까지 간 적은 많지 않았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한 초단이 겪었던 실패는 보통 수준이다. 그러나 그가 언젠가 입단하리라는 생각은 확고했다.”

스승인 김 7단의 자신감은 한 초단의 생활 태도에서 비롯됐다. 한 초단은 다른 연구생들이 빠지기 쉬운 컴퓨터 게임에 한 번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일단 목표를 세우면 그에 방해되는 일은 절대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생래적으로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

“입단 직후 한 초단의 부모를 만나 ‘프로기사로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말해 줬다. 한 초단의 성실성과 집념으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바둑의 재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둑 기술적 재능, 다른 하나는 자기 관리다. 이창호 9단은 이 두 가지를 겸비해 세계정상에 올랐다. 한 초단은 적어도 자기 관리에 관한 한 이 9단에 견줄 만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바둑 3급인 아버지 한열홍(SK건설 부장) 씨와 어머니 최연옥 씨는 “어릴 때부터 뭘 하든 집중력이 좋았다”며 “과묵하고 내성적이었지만 바둑만큼은 적극적으로 좋아해 바둑의 길을 가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부모들은 담대한 성격과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는 힘을 최근 성적을 내는 요인으로 꼽았다.

“중요 대국에서 지면 남들은 며칠씩 방황한다는데 상훈이는 바로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도장에 나가 공부를 했다. 또 강자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는 대담함이 있는 것 같다. 상훈이는 속으로 좋건 싫건 표정에 변화가 없는 포커페이스여서 상대방이 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기사=김성룡 9단은 한 초단의 강점으로 끝내기를 들었다. 비슷한 형세에서 끝내기에 돌입하면 최강자한테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 김 9단은 박영훈 9단 수준은 된다고 평가했다. 김 9단은 “한 초단은 국내 프로기사 중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는 축에 속한다”며 “연구생 시절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승준 9단은 한 초단의 기풍에 대해 “아직 1년도 안 된 신예여서 기풍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이세돌 9단처럼 바둑을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상대를 따라가다가 맞받아치는 쪽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김 9단은 또 “LG배 결승에 오르긴 했지만 대진운도 비교적 좋았고 기량적 측면에선 최정상권과 비교하면 덜 여물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라며 “하지만 기세를 탈 때 마음이 풀어지지 않고 더 독하게 덤비는 스타일이어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상훈 초단이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 오르자 프로기사들의 병역특례 대상 기전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일고 있다.

프로기사의 병역특례는 1994년 병역법 시행령에 규정됐으며 당시 세계 기전이던 동양증권배 후지쓰배 잉창치배 등 3개 기전 결승에 오른 기사를 대상으로 했다. 시행령 개정 이후 신설된 삼성화재배와 LG배 세계기왕전은 제외됐다. 하지만 현재 동양증권배가 폐지됐고 잉창치배는 4년마다 한 번씩 열려 대상 기전이 사실상 후지쓰배 하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기원은 대상 기전을 잉창치배와 후지쓰배 대신 삼성화재배와 LG배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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