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8월 6일 03시 03분



“섬광만이 보였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 B-29 폭격기에 탑승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위력을 지켜본 항법사 시어도어 밴 커크(86) 씨의 회고는 짧고 간단했다.

길이 3m, 지름 71cm, 무게 4t의 원폭은 일본의 군사도시를 단번에 폐허로 만들었다. 히로시마는 섭씨 3만 도의 고열에 휩싸였고 14만여 명이 숨졌다. 7만 명이 즉사했고 그해가 저물기 전에 7만여 명이 더 사망했다. 6만2000여 채의 가옥이 파괴됐으며 35만여 명이 방사선에 피폭됐다. 결국 일본은 항복했고 태평양전쟁은 끝났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는 지금까지도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6월 규마 후미오 일본 방위상은 “전쟁이 끝났다는 면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미국의 원폭 투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경질됐다. 논란이 계속 되자 로버트 조지프 미국 핵비확산 담당 특사는 “원폭이 아니었으면 더 많은 피해를 불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일본인의 생명을 구했다”라고 말했다. 원폭 피해에만 흥분하고 전쟁의 원흉으로서 가해에 대해선 눈감은 일본에 대한 비난이었다.

원폭이 터지기 전까지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낸 사상자는 원폭 피해보다 200여 배나 많은 2000만∼3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은 ‘원폭이 더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희생자 수치를 대비시켰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은 원자력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가공할 파괴력에 놀라 1957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국제적인 공동 관리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가 평화적인 목적에 초점을 맞춰 핵을 이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기 생산에서 세계 최고인 78%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도 38.6%가 원자력 발전이다.

냉전시대의 유물로 지구를 수백 번 파괴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핵폭탄은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인류 공멸에 대한 공감대로 핵 사용은 금지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북한만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핵시설을 건설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핵은 마음먹기에 따라 용도가 극명하게 바뀐다. 한반도에서 무기로서의 핵은 존재해서는 절대 안 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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