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계 “정부, 도시개발사업 위해 발굴기준 완화 나서”

  • 입력 2007년 7월 18일 03시 01분


코멘트
발굴 조사의 심의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하는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조사제도 개선 방안을 둘러싸고 고고학계와 문화재청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고고학계는 “문화재청이 각종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청와대의 압력에 밀려 문화재를 파괴하려 한다”고 비판하는 반면 문화재청은 “고고학계가 대화를 거부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재 보호 포기한 문화재청”=한국고고학회(회장 최병현 숭실대 교수) 등 국내 9개 고고학 단체는 최근 문화재청의 개선 방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가 지적한 주요 문제점은 △의무적으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해야 하는 개발 사업 대상을 3만 m² 이상에서 10만 m² 이상으로 대폭 완화하는 내용 △문화재위원회가 심의해야 할 발굴 대상을 예상 조사기간 100일 이상 발굴에서 200일 이상 발굴로 완화하는 내용 △면적 1만 m² 이하의 발굴에 대한 허가권을 문화재청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위임하는 내용 등이다. 발굴 조사의 심의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땅속에 있는 문화재와 역사가 파괴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번 개선안은 매장문화재가 개발의 최대 장애물이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매장문화재의 분포가 개발 면적의 크고 작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의무 지표조사 대상 면적을 3만 m²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신도시 행복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개발 정책을 펴는 청와대의 압력에 밀려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호라는 본연의 업무를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고고학자들이 진실 호도한다”=문화재청의 기본 시각은 발굴로 인한 국민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고고학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는데도 일부 학자가 고고학계 전체의 의견을 무시한 채 진실을 감추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매장문화재 조사제도 개선 방안이 당장 시행될 것처럼 주장하는 건 여론을 호도하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문화재청 발굴조사과 윤광진 과장은 “매장문화재 지리정보시스템(GIS)이 완전히 구축되는 2009년 이후에야 문화재 지표조사 의무 대상 면적을 지금보다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확대 면적이 5만 m²가 될지 10만 m²가 될지 역시 그때 학계와 숙의한다는 것이 문화재청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발굴 허가권의 지방자치단체 위임에 대해서도 경북 경주와 충남의 부여 공주 등 중요 사적지는 제외하고 원하는 자치단체에 한해 학예직 인력 여건을 따져 엄격히 선별하되 이 역시 학계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감사, 고고학계 폭탄 될까=한편 감사원은 지난달 매장문화재 제도 점검을 위해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이번 감사는 실질적으로 발굴 기관의 발굴 행태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발굴비 전용과 같은 비리가 터져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발굴 기관의 불미스러운 탈법 행위는 감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감사가 의도적이라는 비판도 고고학계에서 나온다. 한 고고학자는 “발굴 비리로 고고학계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해 힘을 뺀 뒤 발굴 조사 개선 방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