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식이 처음으로 우는 장면은 준석이 아버지의 눈이 무섭게 생겼다고 말하자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 거울로 자신의 눈을 볼 때 나왔다. ‘아들은 내 눈이 무섭다고 하네요. 아들에겐 내가 그저 살인을 저지른 무서운 사람으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나도 내 눈이 무섭습니다…’란 내레이션이 흐르고 이강식은 수돗물로 눈을 씻는다. 이강식, 아니 차승원의 눈이 무서울 수 있는가. 무섭기는커녕 ‘약하고 슬픈 눈빛’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눈 속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보고 있는데 그 아들이 무섭다고 하니 하도 기가 막히고 억울해 눈물이 났다.
그런데 15년 만의 하루가 끝나 가는데,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바깥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 하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과 옛날을 회상하다 꺽꺽 우는데, 눈물이 안 났다. 그것이 장진 감독이 치밀하게 준비한, 반전을 위한 숨고르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였다.
분명 ‘아들’(5월 1일 개봉)은 따뜻한 가족 영화다. 서른아홉의 무기수 아버지가 열여덟 고등학생 아들과 만나 보내는 특별한 하루. 장 감독은 특유의 유머 감각과 감성으로 이들의 하루를 더욱 눈부시게 만든다.
‘아들’이란 말을 배우기 시작한 후로 듣는 말보다 안 듣는 말이 더 많은 자식이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은 그리움 때문에 가슴으로 우는 자식이다. 그렇다면 차승원에게 세 살 때 헤어진 아들 류덕환은? 너무나 보고 싶은데 도무지 얼굴이 그려지지 않고 막상 만나니 낯설기만 한 존재다.
그러나 설렘과 떨림으로 만난 이들은 같은 핏줄이란 사실만으로 차츰 마음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
따라서 15년의 ‘별거’는 아니더라도, 그만큼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살아왔다면 하루 동안 부자만의 휴가를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는 짧은 시간이 아니며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영화 속 신부의 말처럼 하루 만에 하느님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만들지 못했지만(6일이나 걸렸다!), 낯선 부자가 진짜 부자처럼 되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사실 장 감독이 마련한 반전이 뭐 대수인가.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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