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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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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려던 용감한 소방관 6명이 건물이 무너져 순직했던 사건이 기억에 생생하다. 공부로 가난을 극복하려던 수십 명의 고시원생이 지하층에서 누군가가 홧김에 지른 불로 인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 발생해 신문 지면을 가득 메운 적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런 불행은 왜 일어나는가? 이런 불행에 직면할 때 우리는 "주님이 왜 그렇게 허락하셨을까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하나님도 무심하시지"라며 체념적으로 탄식하기도 한다. 또 "인명은 재천이고 운수소관"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만 그분이 어느 정도 그런 일에 개입하시거나 허락하시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성경의 전도서를 통해 사람은 '죽을 때'도 '슬플 때'도 있음을 믿으나, 한편 부주의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그러한 때'를 앞당기는 수도 있음을 믿을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강한 힘과 정의감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불행을 막아 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류 대속의 역사는 무산되지 않았겠는가.
이 세상의 삶만을 전부로 바라보면 때로는 고통, 슬픔, 실패로 얼룩진 우리의 짧은 삶이 재앙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을 과거와 현재와 죽음 이후의 영원한 미래까지 연장해 본다면 우리는 더욱 긍정적인 관점에서 이생을 바라볼 수가 있다.
예수께서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로서 이 세상에서 겪는 불행이 오히려 내세의 영원한 행복으로 보상됨을 가르치셨으므로, 비록 비극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면 내적인 평온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가 아닐까.
이원강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미디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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