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한 가족으로 50년…아일랜드출신 천노엘 신부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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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용서해 주렵니까. 교회를 용서해 주렵니까. 나는 긴긴 동안 당신을 외면해 왔습니다.’

광주 북구 엠마우스복지관장인 천노엘(본명 패트릭 노엘 오닐·74·사진) 신부를 ‘장애인의 친구’로 만든 한 소녀의 묘비에 적힌 글이다. 천 신부가 평생 금언으로 알고 살아가는 말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준 천 신부가 28일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는다. 그는 지구 반대편인 아일랜드에서 건너와 50년 가까이 장애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56년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와 천주교 광주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광주 북동성당 주임신부이던 1975년 가까웠던 정신지체장애인이 급성 폐렴으로 19세에 숨을 거둔 것을 보고 ‘장애인특수사목’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그는 병원에서 연고가 없는 소녀를 해부용 시체로 사용하게 해주면 장례를 치러주겠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천 신부는 “그동안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해 주겠다며 거절하고 직접 교회 묘지에서 장례를 치렀다”며 “그때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몸을 던지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장애인이 봉사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가족임을 강조한다. 199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제1회 장애인 인권상’을 주려 하자 “장애인은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장애인 4명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한 평의 땅만 있다면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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