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이야기'를 통해 본 대리번역 관행

  • 입력 2006년 10월 12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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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의 대리번역 논란과 관련, 출판사인 한경BP가 12일 "대리번역이 아니라 이중번역"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 논란으로 출판계의 고질적인 대리번역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문번역가인 김모 씨는 11일 유명 방송인 정지영 씨가 번역자로 기재된 자기계발서 '마시멜로이야기'에 대해 자신이 실제 번역자이며 정 씨는 출간 직전 이름만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경BP는 12일 "책을 번역한 정 씨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전문번역가 김 씨에게도 번역을 의뢰했다"고 밝힌 뒤 "대리번역이 아니라 이중번역"이라면서 정씨와 독자에게 사과했다.

한경BP의 해명에 따르면 이 모든 사태는 "전사적 차원에서 이 책을 띄워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비롯됐다. 출판사는 지난해 7월 치열한 경쟁 끝에 12만 달러 (1억1500여만원)를 내고 판권을 산 뒤 "독자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을 역자로 내세우는 스타마케팅"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따라 유명 방송인인 정 씨를 번역자로 섭외했지만 전문 번역자가 아니어서 오역과 퀄리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제3의 전문번역자에게 번역을 의뢰했다는 것.

비밀엄수를 계약한 김씨의 '폭로'로 이번 일이 불거졌지만, 유명한 사람을 번역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실제 번역은 다른 사람이 하는 대리번역은 출판사에서 오래된 관행이다.

최근 출간된 '긍정심리학'도 비슷한 사례다. 이 책의 번역자는 잘 알려진 심리학자이지만 책은 의학 용어인 'A유형'성격을 '혈액형 A형'으로 번역하는 등 다수의 오역이 실린 상태로 출판됐다. 출판사 측은 "다른 사람이 한 초벌 번역을 바로잡지 못해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다.

대학교수들이 대학원생에게 번역과 감수를 다 맡긴 뒤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작가 안정효 씨는 예전에 "교수라는 신분과 명성에 의지한 매춘행위"라고 이같은 관행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같은 풍토 때문에 번역 책에 대한 신뢰도는 늘 바닥을 밑돈다. 지난해 영미문학연구회 소속 연구자들이 영미문학 고전 36편을 대상으로 번역 수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검토대상인 572종 중 추천본(1,2 등급)으로 평가받은 것은 62종, 신뢰도가 매우 높은 최고등급을 받은 종수는 6종에 불과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번역료가 200자 원고지 1장당 2500~3000원에 불과해 번역자의 생활이 불가능한 현실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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