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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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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지존’ 프랑스 얘기가 아니다. 온 국토가 와인 산지인 이탈리아에 대한 설명이다. 세계 주요 와인 생산국 가운데 가장 오랜 와인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프랑스에 밀려 있던 이탈리아 와인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 세계무대에 우뚝 서다
현대적 와인 경매가 시작된 1970년대 초반까지 이탈리아 와인은 주목받지 못했다. 경매 품목 중 이탈리아 와인은 1∼2% 미만에 불과했다. 네비올로, 산지오베제 등 토착 품종으로 만든 이탈리아 와인이 프랑스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신맛이 강해 와인 애호가에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1970년대 후반 믿기 힘든 사건이 일어났다.
1978년 영국의 와인전문지 디캔터가 주최한 ‘카베르네 소비뇽 콘테스트’에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 볼게리 마을의 무명 와인(1972년산)이 프랑스 최고급 와인을 모두 누르고 ‘최고의 와인’으로 뽑힌 것이다. ‘런던의 심판’이었다. 1976년 프랑스 보르도 레드 와인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패한 ‘파리의 심판’에 이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슈퍼 토스카나의 원조로 불리는 ‘사시카이아’의 등장인 동시에 이탈리아 와인의 세계무대 데뷔였다. 사시카이아는 토착 품종으로만 와인을 만드는 이탈리아에서 예외적으로 프랑스의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이단 와인’.
이후 세계는 이탈리아 와인에 주목했고 오르넬라이아, 마세토 등 ‘숨은 보석’들을 줄줄이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6년 뒤, 세계 최대 와인 소비국인 미국은 프랑스 와인을 제치고 이탈리아 와인을 가장 많이 수입했다.
국내 최초의 와인 경매사인 조정용(41) 씨는 “프랑스와 달리 해외 수출을 배제한 채 자국 소비에만 주력하던 이탈리아가 세계 정상을 향해 돛을 올린 것”이라며 “이탈리아 와인의 신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 한국에도 불어온 이탈리아 와인 바람
2003년 8월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 와인만을 수입하기 시작한 비노비노의 홍경택(57) 사장은 “수입업자들이 몇 년 전만 해도 프랑스 유명 와인을 들여오는 데만 골몰했지만 요즘은 앞 다퉈 이탈리아 와인을 수입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도 프랑스 와인보다 가격이 싸면서 품질이 좋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와인을 찾고 있다. 특히 고가 와인의 경우 같은 가격대라면 이탈리아 와인을 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올해 4월 와인에 입문했다는 회사원 김주희(28·여) 씨는 “와인 마니아 친구의 권유로 이탈리아 와인을 마신 뒤 이탈리아 와인은 시고 맛이 없다는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다”고 말했다.
○ 왜 이탈리아 와인인가
우선 유행의 변화.
유행을 주도하는 국내 와인 애호가들은 프랑스 와인을 즐겨 마셨다. 그것도 그랑크뤼(특급) 와인이 대부분이었다. 1987년 와인 수입이 자유화됐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한번 맛을 본 와인보다는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것이 와인 애호가들의 특징. 웨스틴조선호텔 수석소믈리에 김시균(38) 씨는 “프랑스 와인에 싫증을 느낀 와인 애호가들이 새 맛을 찾아 나섰는데 칠레, 미국, 호주 와인과 함께 이탈리아 와인이 타깃이 됐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와인의 시장 점유율이 2002년 56.5%에서 2005년 37.6%로 떨어졌지만 이탈리아 와인은 7.8%에서 10.2%로 상승한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이탈리아 와인의 ‘내공’도 한국 와인시장에 뿌리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2000년대 초 한국 와인시장은 프랑스와 미국 와인이 주도했다. 하지만 2004년 한국과 칠레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칠레 와인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칠레 와인은 2003년 시장점유율이 6.6%에 불과했지만 FTA 체결 이후 14.4%로 높아졌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신대륙 와인은 가격이나 다양성에서 프랑스 와인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와인전문 PR업체 더블U의 김혜주 대표는 “FTA 이후 칠레 와인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지만 와인 애호가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기에는 모자란 측면이 있다는 와인업계 일각의 평가”라고 말했다. 뒷심 부족이란 얘기다.
반면에 370여 곳의 생산지에서 다른 품종으로 생산되는 이탈리아 와인은 다양성에서 프랑스 와인을 능가한다. 가격 면에서도 초저가의 ‘싸구려’에서 프랑스의 프리미엄 그랑크뤼급에 필적하는 고가까지 다양하다.
이탈리아 음식이 한국인의 입맛과 궁합이 맞는 것도 한몫했다.
이탈리아판 국수와 빈대떡으로 불리는 파스타와 피자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이탈리아 음식이 전국으로 퍼졌다. 음식과 와인은 연인처럼 잠시도 뗄 수 없는 사이. 이탈리아 식당이 대중화에 성공하면서 이탈리아 와인도 함께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소개된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원제 神の滴)’도 무시할 수 없다. 1∼6권까지 25만 부가 팔렸는데 이 만화에 등장한 와인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만화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을 주로 다루지만 2권부터 이탈리아 와인을 고집하는 괴짜 혼마 조스케가 등장해 ‘팔레오 2000년’ 등 품질 좋은 이탈리아 와인을 소개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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