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前차관 “소오강호 떠올리게 하는 참 재미있는 세상”

  • 입력 2006년 8월 10일 16시 19분


코멘트
‘소오강호(笑傲江湖:강호의 패권싸움을 손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영화 동방불패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소오강호’는 중국 소설의 대가 진융(金庸)이 문화대혁명이 한창 일 때 쓴 정치풍자 무협지다. 작품 속 인물은 패권에 집착하는 정치적 부류와 권력 및 정치에 초월한 부류로 나뉘어 극한 대립을 보여준다. 주인공 영호충의 스승은 겉으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제자를 이용해 강호를 재패겠다는 야심을 품은 이중인격자. 스승의 야욕을 세상에 밝히고 바로잡은 영호충은 호탕하게 웃으며 미련 없이 강호를 떠난다.

바로 이 소오강호가 새삼 화제다. 취임 6개월 만에 전격경질 된 문화관광부 유진룡(50) 전 차관은 9일 전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 이임인사에서 30년간 정든 문화부를 떠나는 자신의 심경을 소오강호에 빗대 설명했다.

유 전 차관은 이임인사에서 “후련하면서도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며 “더욱이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기에 그렇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드리고 싶은 말은 많지만, 조용히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참고 가려 한다”며 “농담이지만, 오래전 심심풀이로 읽었던 대중 무협소설의 제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제목이 소오강호였든가 싶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 전 차관이 이임인사에서 새삼스럽게 ‘소오강호’를 언급한 것은, 지난 8일의 경질인사가 청와대의 ‘보복인사’ 때문이라는 논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화부 내에서도 “이번 인사는 유 차관이 청와대의 인사청탁을 거부한데 따른 것”, “현 정부 실세와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는 등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 전 차관은 ‘소오강호’라는 말을 빌려, 자기 한 몸 보존하기 위해 권력자의 회유나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심정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게 유 전 차관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강호를 떠났다. 남겨진 한 직원은 직원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유 전 차관의 경질에 조직 전체가 침통해 하고 있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았던 그 분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호연지기가 느껴져 한편으로 뿌듯하지만, 30년 천직 공무원이 정치권의 이해에 떠밀려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씁쓸하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