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1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입력 2006년 7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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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왔다. 애써 이 시기를 눈감아 버린 ‘삼국사기’의 태도와 견주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삼국유사’의 다른 곳이 아닌 그 책의 첫머리에 단군신화를 실었다는 점으로 더욱 호들갑을 떨고 싶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 첫머리에 실은 ‘이 땅의 첫머리’를 위와 같이 시작하였다. 김부식이나 일연은 비슷한 시대에 살았으므로 같은 문헌자료를 보았을 것이다. 자료로 말하자면 조정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은 김부식이 훨씬 다양하고 귀중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우리 역사를 보는 관점은 서로 달랐다. 김부식은 신라, 고구려, 백제 순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열했지만, 일연은 그 앞에 단군신화를 실었다. 두 책을 집으로 치자면,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서로 관계가 없는 조그만 집을 세 채 지었다가 힘센 주인이 다른 두 채를 구입해서 크게 늘린 모양새다.

그러나 일연의 삼국유사는 세 개의 기둥 위에 단군신화라는 지붕을 씌워, 처음부터 하나의 유기적인 집으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삼국통일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통일은 흩어졌던 것을 다시 하나로 만든다는 뜻이 아닌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라, 우연히 한반도 안에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나라들이었다면 합병이라는 말이 더 올바른 표현이다. 우리가 한민족,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은 단군신화 때문에 생겼고, 지금 우리가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사(遺事)는 ‘잃어버린 사실’ 또는 ‘남겨진 사실’이라는 뜻이다. 김부식이 이미 왕명을 받고 역대에 전승되어 내려온 사료를 집대성해 정사(正史)인 삼국사기를 편찬했으므로, 또 하나의 역사를 편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일연은 그 책에 만족하지 않았다. 김부식의 눈에 들지 않아 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은 데다, 일연이 보기에는 그 남겨진, 또는 버림받은 이야기에 삼국시대 조상들의 세계 인식이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삼국 이전의 이야기를 단군신화나 동명왕신화 같은 신화 형식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일연이 찾아낸 유사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가 삭발한 진전사를 비롯해 승과에 급제한 뒤 참선했던 비슬산, 오어사, 인흥사, 입적한 인각사 등이 모두 삼국유사의 현장이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삼국유사를 집필했지만, 이 집필을 위해 한평생 유사를 수집했던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그가 찾아다녔던 절의 문헌전승과 구비전승들이 자주 인용되는데, 이러한 자료들은 일연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없어졌을, 당대 역사가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던 부스러기들이다.

위당 정인보 선생은 개천절 노래의 첫 구절에서 “우리가 물이라면 샘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고 했다. 용비어천가 첫 장에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아니 그칠 새, 꽃 좋고 여름 하나니”라고 한 것 같이, 우리가 지금 꽃과 열매를 즐길 수 있게 해준 샘과 뿌리가 단군신화라는 사실을 알려준 이가 일연이다. 대학 시절 술집에서 만난 고운기 시인과 양진 사진작가가 삼국유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20년 동안 찍어 온 사진이 이 책에 실렸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몰랐던 유사를 이들이 찾아냈다. 그랬기에 책 이름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라고 하였다. 이 시대에 맞게 DVD 판도 덤으로 준 이 두 사람을 나는 ‘이 시대의 일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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