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힘겹고 아팠노라 사랑하고 썼노라…‘죽음을 그리다’

  • 입력 2006년 7월 1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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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안내하는 죽음의 장면에는 위로와 눈물 대신 웃음이 있다. 유머와 재치는 여러 죽음의 장면을 다채롭게 만든다. 죽음이 문인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죽음’. 그림 제공 아고라
저자가 안내하는 죽음의 장면에는 위로와 눈물 대신 웃음이 있다. 유머와 재치는 여러 죽음의 장면을 다채롭게 만든다. 죽음이 문인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죽음’. 그림 제공 아고라
◇ 죽음을 그리다/미셸 슈나이더 지음·이주영 옮김/352쪽·1만2000원·아고라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 일리치는 죽기 한 시간 전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런데 그게 뭘까,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은?”

세상을 뜨기 하루 전, 톨스토이는 그것의 답을 찾았던 모양이다. 아들 세르게이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리를 사랑해….아주 많이…나는 진리를 사랑해.”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위대한 문인 23명이 마지막에 남긴 말과 글을 통해 미화되거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인 죽음의 얼굴을 드러내려 시도한다.

죽기 직전 앙드레 지드는 “좋아”라고 했고, 에밀리 브론테는 “아니, 아니”라고 했다. 서간문학가인 줄리 레스피나스는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고 아나톨 프랑스는 계속 “어머니, 어머니”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이런 마지막 말들이 정확한지를 누가 알 것인가. 괴테는 “좀 더 많은 빛을(Mehr Licht)”이라는 최후의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그게 아니라 “더는 필요 없어(Mehr Nicht)”였다고 주장한다. 괴테가 죽을 때 임종했던 며느리 오틸리에는 “네 손을 다오”가 마지막 말이었다고 하고 주치의는 괴테가 손을 들어 허공에 글자를 썼는데 글자 중의 하나가 ‘W’라고 증언했다. 베르테르 혹은 빌헬름의 머리글자이거나 ‘여성(Weib)’ 혹은 ‘무엇 때문에?(Warum)’일 수도 있다.

저자가 죽음에 천착하는 이유는 죽음이 “살아남으려는 의지와 삶의 힘겨움이 담겨 있는 단어이며 달구어진 쇠처럼 단단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기품 없는 짓이라는 말도 비웃는다. “왜 기품이 있어야 하는가. 나는 죽을 때가 되면 공정하고 진실해지기만 하면 된다 싶다. 그거면 충분하다.” 죽음을 다루는 저자의 글은 비통함의 무게를 날려버릴 만큼 경쾌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문인들에게도 죽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탕달은 항상 길거리에서 죽게 될까봐 두려워했지만 불행하게도 길거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 세상을 뜨기 20년 전에 벌써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고 묘비명을 만들어 놨지만 스탕달이 죽은 뒤 사람들은 ‘썼노라, 사랑했노라, 살았노라’로 단어의 순서를 바꿔 놓아 버렸다.

그런가 하면 젊을 때부터 이미 삶을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이라고 썼던 릴케는 죽을 때까지도 뼛속까지 시인이었다.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가 패혈증으로 발전해 죽었다는 통설과 달리 릴케의 사인은 백혈병.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에 ‘장미’라는 이름을 붙였고 죽어 가는 자기 몸을 가리켜 ‘고통이 넘기는 사전’이라고 표현했다.

죽음을 멋지게 맞지 못했더라도 문인들이 남긴 말과 글엔 그들의 진면목이 담겨 있다. 자살한 발터 베냐민이 비공개 걸작을 숨겨 놓은 가죽 가방, 나보코프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미완성 소설, 푸시킨의 책상 위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시, 윗도리 속에 꿰매져 있던 파스칼의 자필 수기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 준다. 2003년 프랑스 메디치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 원제 ‘Morts Imaginaires’(2003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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