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24>대금 연주자들은 좌파?

  • 입력 200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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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자세가 가장 힘들다’는 대금 연주자들의 ‘좌향좌’ 고개 자세.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연주 자세가 가장 힘들다’는 대금 연주자들의 ‘좌향좌’ 고개 자세.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전통악기인 대금 연주자들은 ‘좌향좌(左向左) 인생’을 산다. ‘머리’ 속 이데올로기 논쟁이 아니라 ‘몸’이 그렇다는 얘기다.

대금 연주자들을 뒤에서 부르면 십중팔구는 왼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는 ‘좌파’다.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가면 하나같이 의사에게서 “왼쪽 방향으로만 고개를 쓰지 말고 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도 고개를 좀 돌려보라”며 ‘직업병’ 진단을 받기 일쑤다.

왜 그럴까? 바로 대금의 독특한 연주자세 때문.

대금 연주자들은 “동서양 악기를 통틀어 가장 기형적인 자세로 연주해야 하는 악기가 대금”이라고 말한다. 왼쪽 어깨에 얹어 연주하는 대금은 고개를 정면 방향에서 90도 가까이 왼쪽으로 튼 상태에서 연주하는 동서양 유일의 관악기다.

길이도 80cm가 넘어 나발과 함께 전통악기 중 가장 긴 관악기로 꼽히는 대금은 취구(吹口·숨을 불어넣는 구멍)가 왼쪽 끝부분에 뚫려 있어 고개를 왼 방향으로 틀어야만 연주가 가능하다. 게다가 취구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옆으로 돌린 고개를 다시 아래로 꺾어 취구에 입술을 붙인 상태에서 연주해야 한다.

두 팔 역시 긴 대금을 바닥과 거의 평행으로 들어올리고 있어야 하고 특히 왼손은 수평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가장 고역인 것은 연주하는 내내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거나 팔을 내리지 못한 채 이 자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서양 오케스트라에서는 각 악기 파트가 등장하는 부분만 연주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악기를 내려놓아도 되지만, 정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악기가 쉬지 않고 합주를 하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의 대금연주자 김정승 씨는 “길게는 2시간 동안 고개를 꼼짝 않고 왼쪽으로 꺾은 채 긴 대금을 들고 있다 보면 고개는 뻣뻣해지고 팔과 어깨도 마치 벌서고 있는 것처럼 아파 온다”며 “연주가 끝난 뒤 관객에게 인사하기 위해 고개를 가운데로 다시 돌려야 하는 순간이 가장 두렵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대금 연주자에게 치명적인 것은 목 디스크. 이 때문에 대금 연주자들은 마치 수영 전에 ‘준비운동’을 하듯 공연 전후로 10∼20분 목과 어깨 근육을 풀어 주는 운동을 한다.

대금 연주자들은 공연 내내 고개를 ‘좌향좌’로 틀고 있기 때문에 늘 무대 왼쪽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정악단의 자리 배치에서 대금 파트는 항상 무대 오른쪽이다. 그래야만 연주 도중 왼쪽 끝에서 주 선율을 리드하는 피리를 쳐다보며 호흡을 맞출 수 있기 때문.

‘왼손잡이’를 밉보는 오랜 편견 때문인지 정악에서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연주하는 ‘왼손잡이’ 대금 연주자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민속악 대금 연주자 중에는 드물게 ‘우파’도 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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