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뒤 몸이야기]<23>무대위 예술가들의 ‘위’

  • 입력 2006년 3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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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들은 종종 술을 벗 삼아 생활의 어려움을 견뎌 내기도 한다. 사진은 연극 ‘청춘예찬’의 한 장면. 사진 제공 이다
연극배우들은 종종 술을 벗 삼아 생활의 어려움을 견뎌 내기도 한다. 사진은 연극 ‘청춘예찬’의 한 장면. 사진 제공 이다
발레리나의 상처투성이 발이나 연주자들의 굳은살 박인 손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못지않게 ‘혹사’당하는 무대 예술가들의 신체 부위가 있다. 바로 ‘위장’이다.

무대에 서는 예술가들은 제때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발레리나들은 대부분 공연 전에는 거의 굶다시피 하고 공연이 끝난 후 폭식하는 일이 잦다.

오후 7시 반 공연인 경우 대부분 발레리나들은 반(半)인분 정도로 가볍게 점심식사만 할 뿐 저녁을 먹지 않는다. 공복감만 겨우 면하기 위해 공연 시작 2시간 전쯤 바나나 한 개, 혹은 초콜릿 한두 조각으로 때우는 것이 고작.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 강예나 씨는 “물배가 차면 뛸 때 옆구리가 결릴 수도 있어 공연 30분 전쯤 입술만 조금 축이는 정도로 마신다”고 말했다.

클래식 연주자들도 공연을 앞두고는 식사를 적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주회 전엔 긴장 탓에 신경도 예민해져 자칫 소화가 안 될 것을 우려해서다.

반면 국악인들은 비교적 잘 챙겨 먹는 편이다. 국립창극단 박애리 씨는 “완창 판소리를 부르려면 몇 시간씩 걸려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공연 전날엔 고기를 먹어 속을 든든히 채워두고 공연 당일에도 식사를 양껏 한 뒤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완창 판소리에서는 공연자가 흥이 오르면 휴식시간 없이 서너 시간을 내리 공연하기도 한다. 다른 장르와 달리 관객과 호흡하는 판소리 소리꾼들은 목이 마르면 공연 도중 관객 앞에서 물도 마신다.

박 씨는 “공연하다 목이 마르면 소리 도중에 슬쩍 ‘방자가 이도령의 전갈을 전하러 가는디, 목이 말라 술을 한잔 마시고 가는 것이었다. 나도 이참에 한번 마셔 볼란다’ 하고 사설을 늘어놓으며 자연스럽게 마시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인들의 위장은 밥보다 술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연극판=강소주’라는 인식도 있을 만큼 연극인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배우 전무송 씨는 “연극하는 사람치고 위와 간이 좋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술 때문에 갔다’는 말을 들으면서 세상을 뜬 연극인도 많다”고 말했다. 왜 연극하는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실까. 45년 연극 인생을 걸어 온 전 씨의 해석.

“예전엔 연극해도 돈 한푼 못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처자식은 기다릴 텐데, 돈이 없으니 공연이 끝나도 집에 못 가고 밖에서 빙빙 돌다가 밥 대신 소주를 마시곤 했죠. 연극 이야기 하며 술 한잔 걸치면 괜히 호기도 생기고, 연극을 계속할 의욕도 다시 솟고…. 어쩌면 ‘술힘’으로 그 힘든 시절을 버텼는지도 모르겠어요.”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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