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25>발레리나의 ‘그날’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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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그날’이 오면 발레리나들은 어떻게 할까.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 달에 한 번, ‘그날’이 오면 발레리나들은 어떻게 할까.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어느 생리대 광고의 표현을 빌리면,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마술에 걸린다’.

말이 좋아 ‘마술’이지, 많은 여성이 그 기간에는 심리적, 신체적으로 불편을 겪는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다리를 번쩍번쩍 들고, 회전하고, 도약을 해야 하는 발레리나들은 ‘그날’이 오면 어떻게 할까?

현역 발레리나 10명이 익명을 전제로 이야기해 줬다. 우선, 생리일과 공연일이 겹칠 경우 (호르몬 조절) 약을 먹어서라도 날짜를 늦추는지 물었다. 10명 모두 대답은 “아니요”.

“어차피 공연은 계속 있기 때문에 매번 약으로 피해갈 순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이유.

10명 중 8명은 탐폰(삽입형 생리대)을, 1명은 패드(일반 생리대)를, 1명은 ‘불안해서’ 탐폰과 패드를 이중으로 착용하고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작품 의상이 길고 색이 짙으면 그래도 마음이 편한데 ‘백조의 호수’처럼 짧은, 그것도 흰 튀튀(발레복)를 입어야 할 때는 아무래도 걱정이 더 돼요. 보통 때는 튀튀 안에 언더 팬티와 타이츠만 입지만, ‘그날’엔 팬티를 두세 개 더 겹쳐 입죠.”

유난히 생리통이 심하다는 한 발레리나는 “하루에 진통제를 4알(보통은 1, 2알)씩 먹고 무대에 선다”고 말했다.

손끝만 잡아도 파트너의 컨디션을 알아채는 남자 무용수는 발레리나의 ‘그날’을 알 수 있을까? 한 남자 무용수는 “대체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춤을 춰 보면 상대방의 몸이나 움직임이 평소보다 좀 무겁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어요. 예의상 물어보진 않지만 ‘마술 중(?)이구나’라고 생각하죠.”

러시아에서 유학한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주원은 “러시아 발레학교에서는 어린 무용수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생리 첫날에는 클래스(무용수들이 매일 하는 연습) 중 쉬운 동작만 시키고 (양이 가장 많은) 둘째 날에는 아예 의무적으로 쉬게 한다”고 말했다.

발레리나 중에는 ‘무월경’으로 말 못할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삼성제일병원의 송인옥(산부인과) 교수는 “무월경, 뼈엉성증(골다공증), 섭식장애 등 3가지 증상을 통칭해 ‘애슬레틱 트라이어드(Athletic Triad)’라고 하는데 체지방은 적고 활동량은 많은 발레리나와 체조선수,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이를 겪기 쉬운 대표적 직업군”이라고 말했다.

몸에 예민한 발레리나들은 ‘마술에 걸린 몸’의 작은 변화도 알아챈다. “생리 직전 보다는 차라리 시작한 후가 몸이 더 낫다”거나 “생리 첫날에 몸이 가장 유연하다”는 것. 송 교수는 “생리 며칠 전에는 황체 호르몬 수치가 높아져 부종이 생기는 등 ‘생리전증후군’이 나타나는데 생리 시작과 함께 수치가 내려가면 몸이 가뿐해졌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에 응해 준 한 발레리나는 웃으며 살짝 말했다. “사실, 저 지금 하고 있는데 내일 공연이에요.”

‘마술에 걸린 몸’으로 마법의 무대를 보여 주는 모든 발레리나에게 격려의 박수를!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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