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33년 美해리슨 대통령 출생

입력 2006-02-09 03:03수정 2009-10-0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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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대통령으로서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는 후세에 확실한 기억을 남겼다.

하나는 취임 후 꼭 한 달 만에 백악관에서 사망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전을 ‘정책과 이념’의 대결이 아닌 상대방 흠집 내기 등 ‘이미지 선거’로 만든 첫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의 선거전을 계기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하나의 거대한 ‘쇼’로 변했고 지금도 그런 양상을 띠고 있다.

1773년 2월 9일 버지니아 주 찰스시티 카운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해리슨은 군 복무 시절 무자비한 인디언 토벌로 이름을 날렸다. 1811년 11월 티피커누 전투, 이듬해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테임스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명성을 떨친 그는 이 경력을 바탕으로 1816년 하원에 입성해 승승장구한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마틴 밴 뷰런과 맞붙은 1840년 대선에서 그는 선거 전략으로 부유층인 자신을 서민으로 포장하는 데 주력했다.

이때 내건 슬로건이 ‘통나무집과 거친 사과술(Log Cabin & Hard Cyder)’. 통나무집은 고급주택이 아닌 서민들의 집을 의미하고 사과술도 당시 하층민이 주로 마시던 술로 자신이 통나무집에 살며 사과술을 마시는 ‘보통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선거 사상 최초로 로고송을 만들고 모자, 풍선, 현수막 등으로 연설장을 뒤덮었다. 또 전국을 누비며 대형 연설회를 열면서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 폭로, 비방,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된 해리슨의 재임기간은 고작 한 달. 1841년 3월 4일, 비까지 내리는 추운 날씨에 외투도 입지 않고 한 시간 반이 넘게 취임 연설문을 읽은 그는 급성폐렴에 걸려 4월 4일 세상을 떠났다.

취임식에서 궂은 날씨에도 외투를 입지 않은 것은 전쟁영웅인 자신이 6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 젊다는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미지 정치로 대통령이 된 해리슨은 결국 ‘이미지’ 욕심 때문에 대통령 직은 물론 명까지 단축하고 만 셈이다.

‘이미지 정치’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요즘, 해리슨처럼 실제 모습보다는 이미지 과시에 더욱 신경 쓰는 정치인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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