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금융사기 원조’ 박영복 구속

  • 입력 2006년 2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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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인 1974년 2월 6일자 동아일보 사회면 톱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대검 특별수사부는 6일 중소기업은행을 속여 모두 4억8000여만 원의 은행돈을 사취한 금록통상주식회사 대표 박영복 씨를 사기 공문서위조 혐의로 구속했다.’

박영복(69). 1970년대 초대형 금융사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검찰의 추가 수사결과 그가 중소기업은행과 서울은행에서 사기 대출받은 금액은 74억 원으로 불어났다.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한국 최초의 조직적 금융사고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중소기업은행장과 서울은행장 등 금융계 인사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거나 사표를 썼다.

박 씨의 인생은 ‘사기(詐欺)’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

그는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대한해운공사에서 5년간 선원으로 일했다. 사교술에 능해 따분한 선원 생활을 그만두고 무허가 벌목에 손대며 화려한 사기 인생을 시작한다.

중앙합동이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관급공사를 따내려다 1967년 사기 혐의로 처음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이후에도 사기행각을 계속해 나갔다.

1974년의 초대형 금융사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 씨는 우선 회사를 설립해 무역업자 자격을 갖추거나 수출실적이 있는 무역회사를 인수했다. 이렇게 만든 회사가 18개나 됐다. 사채시장에서 빌린 돈을 은행에 예금해 신용을 쌓은 뒤 부동산권리증과 수출신용장을 위조해 거액의 무역금융을 받아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당뇨병 때문에 3년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가석방 기간 중에 또다시 유령회사 설립과 공문서 위조로 사기 대출을 받아 1982년 재수감됐다.

그는 잔여형기 7년에 12년의 형이 추가돼 2001년까지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모두 22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셈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박 씨는 지난달 9일 다시 한번 신문에 이름이 등장했다. 가짜 무역회사를 차리고 보훈복지의료공단과 31명의 투자자에게서 1000억 원의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다시 구속기소된 것이다.

그는 수감생활 중에 치밀하게 구상한 무역 다단계 사기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박 씨의 인생을 보면 ‘어렸을 적 버릇 평생 간다’는 교훈이 절로 실감난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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