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20>“동작을 쪼개라” 마임배우의 몸짓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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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마임 배우로 꼽히는 마르셀 마르소의 공연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 시대 최고의 마임 배우로 꼽히는 마르셀 마르소의 공연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무대 예술을 흔히 ‘풀 샷(Full Shot)의 예술’이라고 한다. 관객이 무대 전경과 배우(무용수)의 전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임만큼은 풀 샷이 아닌, TV처럼 ‘클로즈업’이 중요하다.

“‘몸짓의 언어’로 관객과 소통하는 마임에서는 관객이 배우의 몸 전체가 아니라, 배우가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동작만을 정확히 주목할 수 있도록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해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신체 부위는 움직이지 않은 채 필요한 부분만 움직여 관객의 주목도를 높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재경·마임 배우)

가령 고개를 옆으로 돌릴 때 보통 사람들은 머리, 목, 어깨, 상체 일부가 함께 움직이지만 마임 배우들은 목과 몸통은 움직이지 않은 채 머리만 옆으로 돌리는 식이다. 이처럼 특정 신체 부위의 통제력과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마임 배우들은 종종 몸에 막대를 묶고 연습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보통 사람들이 쓰지 않는 몸 각 부위의 관절이나 퇴화된 근육도 사용하게 된다. 미세한 안면 근육을 자유롭게 쓰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임도완 대표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은 채 양 눈썹을 순식간에 위아래로 각기 따로 움직이기도 하고 양 귀도 각각 쫑긋거린다.

마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몸의 분절(isolation)’이다. 마치 브레이크 댄스를 추듯 동작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것.

“물컵을 집어 드는 행동을 ‘손을 뻗는다-손가락을 약간 오므린다-물컵에 손을 댄다-손가락으로 감싼다-컵을 위로 올린다’ 하는 식으로 쪼개다 보면 무려 20여 가지 단계로 나뉜다. 이런 분절을 알아야 어느 단계에서 어느 신체 부위를 통제할지 결정할 수 있다. 마임을 하다 보면 일상의 작은 동작들도 15∼20개로 잘게 쪼개 보는 습관이 저절로 생긴다.”(고재경)

임 대표가 가장 많이 ‘쪼개서’ 본 것은 올림픽 선수들의 동작이다. 그는 “웬만한 올림픽 종목 동작은 녹화해서 거의 다 따라했다”며 “운동선수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몸을 쓰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교과서”라고 말했다.

대사 없이 몸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마임은 무용과 가장 닮았다. 하지만 신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되는 무용과 달리 마임은 텅 빈 무대에서 몸을 이용해서 빚어 내는 상상의 공간을 보여 준다.

마임 배우가 어딘가에 기대는 동작을 취하면 관객의 눈에는 어느새 배우 등 뒤의 견고한 벽이 ‘보이고’, 배우가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눈으로 무언가를 쫓으면 관객도 텅 빈 무대를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를 ‘보게 된다.’

결국 마임은 ‘몸에서 시작하지만 환영(幻影)으로 끝나는’ 예술인 셈이다. 배우들이 침묵으로 건네는 말을, 관객들이 마음을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유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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