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3년 美월리스 州지사 취임

  • 입력 2006년 1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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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말하겠습니다. 지금 인종분리, 내일도 인종분리, 영원히 인종분리라고!”

1963년 1월 14일, 미국 앨라배마 주지사 취임식. 단상에 선 44세의 신임 주지사 조지 월리스가 외쳤다. 갈채와 야유가 쏟아졌다.

정치적 매장을 각오했던 것일까. 아니었다. 그의 외침은 이후에도 세 번이나 주지사에 당선되고 네 차례나 미 대통령선거에 도전할 ‘거물’의 탄생을 알리는 포효였다.

1946년 민주당 소속의 앨라배마 주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할 때만 해도 그는 진보적 정치인으로 꼽혔다. 그의 인종정책을 돌려놓은 계기는 1958년 주지사 선거에서의 패배였다. 승자인 존 패터슨이 백인 인종주의 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KK)의 지원을 받은 반면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가 지지한 월리스는 쓴잔을 맛본 것이다. 1962년 선거에서의 승리는 그가 내건 극단적 분리주의 공약을 백인들이 지지한 결과였다.

1963년 6월 미국인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을 또렷하게 새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흑인 학생 두 명의 앨라배마대 입학을 금지한 그의 조치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시정 명령을 내린 것이다. 월리스 주지사는 출동한 연방 관리들에게 맞서 혼자 대학 정문을 막아섰다. 백인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1966년 주지사 연임을 금지한 주법에 따라 그는 부인을 선거에 내보내 당선시켰다. 그 뒤 개정된 법에 따라 1970년, 1974년, 1982년에도 주지사에 당선됐다. 대선에도 1964년부터 잇따라 네 차례나 도전했다.

1972년 ‘유명해지고 싶다’는 백인 저격범의 총탄이 그의 척추를 강타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가운데도 정력적인 활동은 여전했다. 1976년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는 지미 카터에게 참패했지만 “내가 남부 정치인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카터가 등장한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1980년대 들어 그는 다시 변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며 흑인 민권운동가들을 찾아 용서를 구한 것이다. ‘인종주의의 퇴조에 편승한 것’이라는 눈총도 받았지만 1987년 끝난 마지막 주지사 임기에는 수많은 흑인을 공직에 임용했다.

1998년 9월 그는 변신으로 점철된 삶을 마쳤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의 용기 있는 변화와 장애에 맞선 투쟁’을 추모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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