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자,美에 빠지다

입력 2005-12-16 03:08수정 2009-10-0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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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그루밍(Grooming)의 시대.’

국내 최대의 화장품 회사 태평양은 5월 출간한 단행본 ‘멘스 그루밍(Men's Grooming)’에서 “남성들의 그루밍이 새로운 문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메트로섹슈얼과 위버섹슈얼이 새로운 남성상으로 등장하면서 남성들의 몸 관리가 대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루밍’이란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주는 데서 유래된 말. 최근에는 피부나 모발케어를 비롯해 성형이나 스타일 관리까지 포함하는 토털 패션 용어로 쓰인다.

최근 남성만을 대상으로 미용 성형을 해주는 ‘꽃미남 클리닉’인 토털 그루밍 숍이 등장하고 있다. ‘여성출입금지구역’을 표방한 이곳에는 연말 잦은 술자리로 인한 피부 트러블로 고민하거나 면접 때 첫인상을 돋보이게 하려는 남성 고객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피부 관리를 통한 자신감 회복은 물론 자신에게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는 사실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임재욱(36) 씨는 “평일엔 회사 일로, 주말엔 가족에게 봉사하며 책 한 줄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게 한국 남성의 현실”이라며 “어느새 탄력이 없어진 얼굴을 위해 ‘더 늦기 전에’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골프도 일의 연장이어서 이 곳을 찾는 게 나를 위한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토털 그루밍 숍 ‘레알포맨’을 찾은 남성 고객들의 이야기를 3일간 들었다.

○ 남성,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5일 오전 11시 반경.

30대 남성 2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38세 동갑내기인 김모 씨와 차모 씨는 정보기술(IT)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동료. 석 달 전부터 이곳에서 관리를 받으며 ‘효과’를 본 김 씨의 권유로 차 씨가 방문했다.

차 씨의 고민은 “얼굴이 칙칙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는 것. 30대 초반에는 스킨로션도 안 바를 정도로 피부에 자신이 있었지만 최근엔 아내마저 “늙어 보인다”고 핀잔을 주고 있다.

차 씨는 특히 연말을 맞아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술자리가 잦아지면서부터 토털 미용 숍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매너가 좋아 사내 고객 상대 0순위로 뽑히던 차 씨에게 한 클라이언트가 “(나이가 많아 보여) 부장인 줄 알았다”고 말한 뒤, 부장이 그를 대동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몰라보게 젊어진 김 씨가 자주 따라 나섰고 부장의 신임도 달라졌다.

이경희 레알에스테틱 원장과 상담한 뒤 정밀 테스트를 거친 차 씨. “술과 담배, 스트레스로 인해 모공 확장이 심하고 홍반 기미가 많다”는 진단을 받았다. 얼굴에 점이 많은 것도 불만이던 차 씨는 점 제거 시술을 받은 뒤 80만 원짜리 스킨케어 B 코스를 선택했다.

그는 “처음엔 어색했으나 남자들뿐이어서 편한 느낌이 들었다”며 “괜히 고민하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느니 제대로 투자해 김 씨처럼 당당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레알포맨에 따르면 스킨케어를 의뢰하는 남성들은 차 씨처럼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 가장 많다. 이 원장은 “‘30대 초반까지 여드름 한번 나지 않던 얼굴이 탄력을 잃거나 칙칙해졌다’고 토로하는 고객이 많다”며 “특별히 문제가 있기보단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때를 놓치겠다는 생각으로 방문한다”고 말했다.

연말이 되자 30, 40대의 방문은 더욱 늘었다. 조선희 레알포맨 마케팅 과장은 “연말을 맞아 주말에 골프치고 저녁 무렵 클라이언트와 함께 마사지를 받으러 오거나 술자리 다음날 함께 스킨케어를 받으러 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비용에는 관대, 눈에는 안띄게

이곳에서는 고객끼리 서로 마주치는 것을 싫어하고 케어나 마사지를 받을 때도 머뭇거린다.

기자가 미리 고객의 허락을 받고 관리실로 들어가도 수줍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 여성 관리사는 “낯선 이끼리도 서로 등을 밀어주는 남자 목욕탕의 분위기는 이곳에 거의 없는 편이며 오히려 여성 전용 그루밍 숍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여성들은 모르는 사이라도 대기실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곤 하지만 남성들은 다른 고객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며 “정보도 인터넷 등을 통해 혼자 찾고, 올 때도 함께 케어를 받는 동병상련의 친구와 오든지 아니면 대부분 혼자 온다”고 말했다.

모발케어나 성형수술을 받는 고객들은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이마 쪽 숱이 적어 모발 관리를 받는 한 대학생(26)은 “취업을 앞두고 성형이나 모발 관리를 받는 이들이 주위에 많지만 서로 의논하진 않는다”며 “예방 차원이지만 ‘젊은 사람이 벌써’라는 오해를 사는 게 싫다”고 말했다.

남성 고객이 비용에 더 관대하다는 것도 여성과 다른 점이다. 7일 이마에 주름을 없애고 싶어 보톡스 주사 시술을 상담하러 왔던 이모(30) 씨. 상담 끝에 눈가와 턱에도 맞기로 결정했다. 이 씨는 “수술 뒤 결과가 좋으면 스킨케어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레알포맨을 찾은 남성들은 대체로 이 씨와 비슷한 결정을 한다. 한가지 고민으로 찾아왔다가 다른 관리도 받는 경우가 많다. 코스를 선택할 때도 최고급이나 그 아래 단계를 선택했다. 남성들은 미용 투자에 돈을 아까워할 것이라는 추측은 이곳에선 맞지 않았다.

40대 초반의 대학 교수인 이모 씨는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생전 처음 받아본 스킨케어에 “세상에 이런 삶도 있는 줄 몰랐다”며 모발케어 코스까지 함께 등록했다. 아내나 연인의 권유와 설득에 이끌려 방문했다가 나중엔 자발적으로 모발이나 성형까지 하는 이들도 상당하다는 게 레알포맨 측의 귀띔.

남성들이 성형수술에서 중시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빨리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것’. 강 원장은 “돈 들인 티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얘기를 듣는 정도의 시술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 자기만을 위한 시간

미용에 대한 관심이 남성 일부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M&C리서치’가 올해 초 수도권 15∼49세 남성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 1명당 평균 3.6개의 피부탄력이나 모공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응답자 중 약 30%가 팩이나 얼굴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있으며, 80%가 “한번쯤 받고 싶다”고 답했다.

스킨 및 모발케어를 받는 박모(34·패션업) 씨는 미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 ‘자신에게 투자하는 만족감’을 들었다. 박 씨는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얼굴이나 몸 상태에 무지하기 때문에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라며 “이곳에 오면 일주일에 1∼2시간이나마 나 자신을 위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 친구와 이별한 뒤 정신 상담까지 받은 경험이 있는 박모(31·자영업) 씨는 이곳에서 ‘정신적 평온’을 얻었다. 그는 “‘헤어진 이유가 혹시 외모 때문은 아닐까’하는 자괴감을 이곳에서 케어를 받으며 없앨 수 있었다”면서 “내 몸을 소중하게 다루는 데서 받은 위안은 정신과 의사의 몇 마디 말보다 더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레알성형외과의 김수신 원장은 “이탈리아의 경우 여권이 신장돼 이성관계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남성 성형 비율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한국 남성도 자신을 관리하지 않으면 휴먼네트워크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는 심리가 일반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고 말했다.

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남성 토털 그루밍 숍은…▼

《남성 토털 그루밍 숍에서 시술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스킨케어 모발케어 성형수술 등.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피부나 모발이 거칠기 때문에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

○ 스킨케어

남성 피부는 여성에 비해 수분 증발량이 많아 각질층이 건조하며, 피지가 많고 모공도 크다. 이 때문에 딥 클렌징을 통해 모공 속 노폐물과 잔여물을 충분히 제거해야 한다.

다음은 건조해진 피부의 각질층 제거. 각질층이 두꺼울수록 노화가 빠르고 칙칙한 피부의 원인이 된다. 주기적으로 각질을 제거하지 않으면 화장품을 발라도 유효 성분이 피부 깊숙이 침투하지 않는다. 각질 제거 뒤엔 수분 공급 팩을 해준다.

남성의 피부는 여성보다 두껍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피부탄력 단백질인 콜라겐의 합성을 감소시키지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콜라겐 합성을 촉진시키기 때문. 남성이 여성보다 잔주름이 늦게 생기면서도 어느 순간 깊은 주름이 갑자기 드러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부에 막을 형성해 수분을 체류시키는 고무나 벨벳 마스크 팩은 필수. 동물의 세포나 식물이나 과일에 많이 있는 천연 황산화 물질을 오존 처리한 자연친화적인 제품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과정을 거친다. 담배연기에 찌든 칙칙해진 피부에는 고농축의 활성이온 비타민 C를 공급해준다.

○ 모발케어

남성은 두피가 두껍고 거친 게 특징. 게다가 모발이나 두피 상태에 맞지 않는 헤어 제품을 사용해 트러블이 잘 일어난다.

트리트먼트로 각질과 노폐물을 제거하고 산소를 공급해 세포 호흡을 촉진시키는 것이 모발 성장에 도움이 된다.

○ 성형수술

여성과 달리 남성은 진한 쌍꺼풀 등 뚜렷한 변화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표시가 최대한 나지 않기 바란다.

눈의 세로 간격을 넓혀 검은 눈동자가 크게 보이게 하는 눈동자 트임술은 최근 각광받는 시술. 눈매가 눈동자를 가려 졸린 듯한 인상을 주거나 무의식 중에 눈을 치켜떠 이마에 주름이 생기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5일 정도면 부기가 빠진다.

보톡스는 간단한 시술로 주름을 없앨 수 있다. 턱에 보톡스를 맞으면 근육의 움직임을 막아줘 얼굴이 갸름해지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보톡스는 주기적으로 시술을 받아야 한다.

필러 성형은 주사를 이용해 콧대와 코끝을 자연스럽게 높이는 방법. 시술 시간이 1∼2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칼을 대지 않는다. 보톡스와 마찬가지로 영구적이지 않다.

▼‘꽃미남’ 원조는 신라시대 화랑▼

화장(化粧)을 포함한 그루밍은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되지만 남성 그루밍의 역사도 여성 못지않다. 선사시대부터 이미 부족의 남성들이 흙과 자연 광석을 이용해 얼굴과 몸에 화장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의 남성 화장은 아름다움이 목적이 아니라 권위와 전투 의식을 과시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고대 이집트 남성들도 스킨케어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집트의 귀족층에서는 여성은 희게, 남성은 갈색 피부로 가꾸는 게 유행했다. 남성들은 수아부라는 표백토와 재를 섞은 반죽으로 각질을 제거하고 향유로 마사지했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라시대 화랑(花郞)은 ‘꽃미남’의 원조격이다. 이들은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영육일치(靈肉一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여성 못지않게 곱게 화장했다. 꽃으로 연지를 만들어 뺨과 입술에 바르고 현대의 색조 화장에 해당하는 색분(色粉)도 사용했다. 귀고리 가락지 팔찌 목걸이 등 여러 장신구로 장식하는 게 용맹과 기품을 돋보이게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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