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순응]名畵엔 국경이 없다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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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폴 세잔, 헨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등 서양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최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전시됐다. 이 작품들은 11월 초 뉴욕 소더비 경매에 올려질 것이다. 그중 가장 비싼 작품은 모네의 ‘대운하’로 추정가가 120억 원에서 160억 원 사이다. 이 작품의 파격적인 구도는 에도시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민속그림 우키요에(浮世繪·18세기 일본에서 유행한 목판풍속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인상주의 미술은 우키요에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꽃피운 미술사조다. 모네 역시 그러했다.

유럽인들이 일본 문물을 처음 접하고 일본 열풍에 휩싸이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당시 열강의 제국주의 기류에 편승한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기네 문화를 알리는 데 열중했다. 그 통로는 만국박람회였다. 당시 내세울 만한 공산품이 없었던 일본인들이 넉 달이 넘는 기나긴 항해를 거쳐 런던, 파리에 출품한 것은 민속품이나 서화, 골동 등이었다.

유럽 인텔리들 사이에는 일본 물건 수집 열풍이 일었다. 화가들을 사로잡은 것은 포장재로 사용한 일본 우키요에였다. 우키요에의 파격은 카메라의 발명으로 좌절하고 있던 화가들에게 빛을 던져 주었다. 2000년 ‘라이프’지는 뉴밀레니엄을 기념해 과거 1000년간 세계사를 만든 100명의 인물을 뽑았는데, 그중의 86번째가 일본의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였다.

일본 열풍이 유럽을 휩쓸 때 우리는 대원군의 쇄국 치하에 있었다. 우리 예술의 빼어남을 먼저 알아본 것은 제국주의의 각축으로 한반도에 진출한 서양인과 일본인이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였다. ‘한일 우정의 해 2005’를 기념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반갑다, 우리 민화전’이 열리고 있다. 그중 47점이 바로 야나기가 설립한 일본 민예관에서 출품한 작품이다. 야나기는 1959년 ‘민게이(民藝)’라는 잡지에 발표한 ‘불가사의한 조선 민화’라는 논문에서 “한국 민화는 상상도 못할 만큼 신선하고 자유스러운 작품이어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고 했다. 만약 우리 민화가 서양에 제대로 소개되었더라면 서양미술의 흐름을 바꿔 놓지 않았을까? 그 파격성이나 추상성, 장식성, 현대성에 있어서 우키요에만 못할 것이 없다.

우리 것을 바깥에 알리는 일에도 소홀했지만 외국 문화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폐쇄성은 아직도 강고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중앙박물관에는 외국 작품이 거의 없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을 여행하면서 놀라는 것이 있다. 공공미술관은 물론 일본 전역에 있는 사설미술관 등에서 서양미술품을 볼 수 있다.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소장 전시하고 있는 외국 문화재는 양과 질에서 놀랍다. 일본의 국보 1000여 점 중에는 우리 것을 포함해 그들이 공식적으로 외국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들이 많다. 국보 도자기 14점 중에는 9점이 외국산이고 그중의 한 점이 조선시대 막사발인 오이도다완이다. 반면 우리 국보에는 외국 것이 한 점도 없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가 국민정신의 고양뿐만 아니라 국부 창출에까지도 공헌한다고 한다. 서양의 유명 작가 전시회에 예외 없이 이루는 장사진, 급증하는 외국 작품의 수입은 우리 국민의 목마름을 보여 준다. 이제는 국가든 기업이든 외국 작품 구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거두어들일 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도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거장들의 작품 몇 점쯤은 걸려 있어야 한다. 문화가 국력이라면 그 힘은 개방성과 수용성으로부터 나온다.

김순응 케이옥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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