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작의 기준은 “부산을 通했느냐”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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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전은 ‘아시아 영화의 발견’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그렇다면 외부의 시선은 부산영화제의 성장과 아시아 및 한국 영화에서 발견되는 변화의 기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부산영화제 10주년을 맞아 부산을 찾은 프랑스 칸영화제의 티에리 프레모, 독일 베를린영화제의 디터 코슬릭, 미국 선댄스 국제 영화제의 제프리 길모어 등 3명의 집행위원장을 영화평론가 강유정씨가 만나 한국 및 아시아 영화에 대한 전망과 견해를 들어보았다.》

-올해 10회를 맞은 부산영화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어떤 변화가 느껴지는가?

△티에리 프레모=부산영화제는 정말 급속하게 성장한 영화제이다. 물론 이 영화제의 발전에는 세계 영화가 아시아 영화를 주목했던 시기와의 행복한 우연과 조우가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시선이 다른 것을 절실히 원할 때 부산영화제는 그 다른 것, 아시아와 한국 영화를 선보이는 창 구실을 했다.

△디터 코슬릭=한국은 모던한 것과 전통적인 것이 공존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부산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외국 영화제와 비슷한 듯도 싶지만 아주 독자적이고 고유하다.

△제프리 길모어=지난 10년간 부산은 뛰어난 성과를 얻고 발전을 거듭했다. 프로그램과 마케팅 면에서도 뛰어났으니까. 아시아 영화의 진화의 방향을 설정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더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영화제는 유럽의 것도, 미국의 것도 아닌 아시아, 한국, 부산의 영화제이다. 영화제는 단지 영화 산업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체제와 문화적 발전 방향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허우 사우시엔 감독의 개막작 ‘쓰리 타임즈’를 보니 기존의 자기 세계와 결별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베를린과 칸. 선댄스는 아시아 영화 특히 한국 영화에 주목했다. 어떤 점에 주목했고, 아시아와 한국 영화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과연 아시아 영화에서 변화가 느껴지는가?

△코슬릭=아시아 국가들의 영화는 유럽의 시각에서 보면 언제나 새롭다. 다르다는 것 자체가 흥미를 끈다. 물론 10년 전만 하더라도 아시아 영화는 각각 국가적 특성과 전통으로 호소했다. 임권택 감독이 특히 그랬다. 지금은 아시아 영화들이 현대화되면서 각각 나라의 특성들은 많이 사라지고 표준화되었다. 하지만 표준화와 현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현대화된 가운데서 또 독자성이 드러난다.

△프레모=아시아 영화의 희망은 매우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한다는 데 있다. 일단 여러 장르들, 서로 어울리기 힘든 장르들마저도 한 편의 영화 안에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이야기인데 작가주의와 상업주의가 이토록 병행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러한 공존은 언뜻 불편해보이지만 실상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모아진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존 포드 감독은 “더 사소하고 개인적일 수록, 보다 더 세계적”이라는 말을 했다. 요즘 아시아 영화와 한국 영화를 볼 때 이 말을 절감한다. 이제는 국가적이고 전통적인 것으로 호소하는 단계를 넘어 매우 사소한 것을 통해 구체성을 드러내는 데 이른 듯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아시아 영화는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매력적이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길모어=아시아 영화는 달라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한국 영화의 큰 힘은 각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힘에서 비롯된다. 정형화된 틀을 깨고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조금 구체적인 질문으로 가보자. 티에리 프리모 위원장은 한국 영화의 특수성을 주목한다고 했고 코슬릭 위원장은 임권택과 박찬욱을 예로 들면서 한국 영화의 개성에 감탄한다고 말했다. 임권택은 내가 보기에도 한국적이라는 말에 쉽게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박찬욱의 영화도 한국적인가?

△프레모=좋은 질문이다. 한국 영화의 흐름을 보면 대개 전통적인 것이면서도 이를 뒤틀고 전복하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친절한 금자씨’는 ‘킬 빌’과 서사구조가 거의 똑같다. 어떤 점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방법적인 면에서, 그러니까 스타일의 면에서 서양영화의 문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여기서 한국 영화를 한 번 살펴보자. 한국영화에 꼭 들어가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다. 가령, 유년시절은 한국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처럼 한국 영화에는 서양에 이미 존재했던 장르를 빌면서도 방법적으로 완전히 한국적인 고유성이 있다. 박찬욱도 그렇다. 그리고 박찬욱을 비롯한 한국 영화의 특질이 그렇다. 사실, 나는 한국을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를 보면 레벨을 뗀다 해도 한국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코슬릭=외부의 시각에서 봤을 때, 가장 놀라운 점은 박찬욱의 ‘올드 보이’ 같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공포 영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독일이었다면 이 영화는 분명 공포 영화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잘 이해가 안갈 정도로 어떤 점에서 한국은 예술성과 상업성이 공존한다. 관객들의 반응도 그렇다.

- 많은 한국 영화들이 외국 진출을 꾀하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나 미국은 시장으로서 굉장한 유혹이자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2004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가 인상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어떤 점이 새로웠나? 그리고 과연 한국 영화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나?

△길모어=일단, ‘여자, 정혜’는 여성형이 매우 독특했다. 여자를 통해 사회를 이야기하는 구성이 탁월했다. 심리적인 스펙트럼을 아주 섬세하고 세밀히 보여주더라. 흠, 그런데, 영화의 탁월함이나 작품의 우수성과 시장에서의 논리는 좀 다르다. 미안하지만, 한국 영화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미국적인 것 외에 관심이 없다. 오해는 말자. 미국인들은 자신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힘들여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편하게 흡수하고자 한다. 내 말은, 아마 미국인들에게 한국 영화의 문법은 낯설 것이다. 이해하기 힘들 것이란 뜻이다. 그러다 보니 굳이 한국 영화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성공 가능성은 좀 낮은 것이 아닐까.

-베를린이나 칸은 한국 감독들이 숨겨진 재능을 인증받고 거장 감독의 대열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매개를 담당했던 영화제들이다. 그런 만큼 당신들이 어떤 새로운 감독을 주목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프레모=새로운 감독들이 많다. ‘그 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나 ‘주먹이 운다’의 류승완 감독을 특히 주목한다. 그들은 여전히 새롭고 독특하다.

△코슬릭=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 그리고 김기덕이나 임권택은 베를린이 발견했다기보다 이미 내재적으로 충분히 발굴됐던 감독이다. 나 이전의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도 이미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외국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한국 영화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한 마디 부탁한다.

△코슬릭=이미 부산은 충분히 발전했다. 다만, 너무 주류만을 주목하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영화제란 젊은 영화인들에게 발판을 만들어주는 계기이지, 이미 확인된 주류와 거장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명성을 확신시켜주는 자리는 아니다. 젊은 영화인들이 주목의 발판을 마련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의 장이 되어야 한다.

△프레모=지금 한국 영화에 대한 반응은 흥분에 가깝다. 흥분은 좋다. 하지만 그 흥분을 한편으로 경계해야 한다. 다들 좋아하고 흥분한다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만큼 위험하고 나쁠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런 전폭적 신뢰와 선호는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지금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길모어=한국 영화는 장르를 재발명한다. 호러든 스릴러든 로맨틱 코미디든 간에 한국 영화는 이 모든 장르를 재발견하고 재창조해내는 데 뛰어나다. 한국 영화는 따라서 표본화되거나 표준화되지 않는 새로움을 늘 간직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제는 문화적 지표이자 넓은 근본(베이스)이다.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고유한 스타일을 갖도록 고민해야 한다.

대담·정리=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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