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賣物로 만나는 우리들의 역사’

  • 입력 2005년 10월 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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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식 컬렉션 탐험기-賣物로 만나는 우리들의 역사/조성관 지음/447쪽·2만3000원·웅진씽크하우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민관식 전 문교부 장관의 자택은 마치 한국 현대사 박물관 같다. 5선 의원, 국회의장 권한대행, 대한체육회장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중책을 맡아 온 민 씨가 학창시절부터 꼼꼼히 모아 온 소장품 5만여 점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현직 기자인 저자가 민 씨의 도움을 받아 각각의 소장품에 얽힌 사연들을 풀어 놓았다. 우리말을 쓸 수 없던 일제강점기 학생 시절 노트, 역대 대통령의 선물 등 온갖 물건과 자료들을 통해 지나간 시대의 아름다운 사연들을 만날 수 있다.

‘기나긴 겨울도 지나가고 육 년 동안 뛰어놀던 정든 학교 마당의 나뭇가지도 푸릇푸릇 새로운 희망을 안고 움터 오지만, 저희들 어린 가슴속에는 남모르는 검은 구름이 끼어 있었더랍니다. 그것은 불현듯이 돌아가신 어버이를 뵙고 싶은 때문이 아니라, 다만 어려운 살림살이 가운데서라도 어떻게 하면 저희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중학교에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걱정의 구름이었습니다. (중략) 이제 여러 어른의 힘을 업어 꿈에도 그리던 중학생으로 학업을 계속하게 되었으니 (중략) 한사코 훌륭한 사람으로 출세하겠습니다. 단기 4293년(1960년) 4월 1일 제4회 장학생 대표 윤여정.’

컬렉션 가운데 중산육영회 장학생 선발 자료의 일부분이다. 장학생으로 선발돼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 어린이들을 대표해 윤여정이란 소녀가 쓴 답사다. 뒷날 연기자로 대성한 그 윤여정 씨다.

자료 가운데는 1963년 2월 10일자 동아일보 호외도 있다. 무슨 엄청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날 발표된 서울시내 중학교 합격자 명단을 게재하기 위해서 호외를 발행한 것. 합격한 어린이들은 이 호외를 오려서 자신이 합격생임을 증명하는 자료로 첨부해 장학생 선발을 신청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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