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무능한 좌파? 선동가?…당대 이론가들 난상토론

  • 입력 2005년 9월 30일 1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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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문화아카데미 창립 40주년 기념 대화모임29일 평창동 올림피아 호텔에서 '만주화,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를 주제로 열린 대화문화아카데미 창립 40주년 기념 대화모임 발제자들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세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전 대통령 정책실장), 최장집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연합]
대화문화아카데미 창립 40주년 기념 대화모임
29일 평창동 올림피아 호텔에서 '만주화,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를 주제로 열린 대화문화아카데미 창립 40주년 기념 대화모임 발제자들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세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전 대통령 정책실장), 최장집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연합]

정부 관료와 대학교수, 시민운동가 등 각계인사 60여명이 한국사회의 양극화에 대해 7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화문화아카데미(옛 크리스챤아카데미)가 29일‘민주화,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 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정책 브레인이었던 서울대 박세일·고려대 최장집·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대표 발제자로 참석,각계 인사들과 토론을 벌였다.

박세일 교수가 ‘성장’을 강조한 반면, 최장집 교수는 ‘분배’에 초점을 맞췄다. 이정우 교수는 ‘분배와 성장의 동시발전’을 강조하면서도 ‘분배’쪽에 무게를 기울였다.

▽양극화의 원인과 처방▽

세 교수는 우리나라가 다른 어떤 시기보다 심각한 양극화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에는 동의했으나 그 원인과 처방에 대해선 3인 3색으로 각기 다른 시각을 보였다.

먼저 발제에 나선 이정우 교수는 “개발독재시대 이후 경제와 사회 곳곳에 민주주의의 결여와 배제의 문화가 침투했고, 이런 와중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양극화가 가속화됐다”고 진단했다. 해법에 있어서도 이 교수는 “성장 지상주의의 폐단 극복이 현 정부의 철학”이라며 “성장과 분배가 조화하는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제자 박세일 교수는 “국가능력의 부족이 양극화의 본질적인 원인”이라며 “세계화라는 거대흐름 보다 그에 동참하느냐 못하느냐하는 국가능력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잠재성장률 향상과 교육개혁, 교육-고용-복지의 3각 안전망(Safety Network) 구축”을 해법으로 들었다.

마지막으로 최장집 교수는 “발전 독재시대 이후 노동의 참여가 억제된 구조가 양극화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노동을 생산체제 실체로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이 후에 생산현장, 작업 현장에서 유럽식의 조합주의적인 복지국가 모델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 정부인가▽

발제 이후 세 교수는 다른 각계 인사들과 문답을 주고받았다.

우선 장기표 새 정치연대 대표는 “참여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주의적 발상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논란과 거부반응만 불러일으킬 뿐 실질적 분배를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정우 교수는 “좌파, 사회주의라는 공격을 2년 반 동안 받았는데, 구체적으로 참여정부의 어느 정책이 사회주의라는 것인지 말씀해 달라”며 “또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시비를 걸어온 것은 정부가 아니라 일부 언론과 학계”라고 반박했다.

반면 최장집 교수는 “현 정부는 역대 정부 중 가장 반 노동적인 정부”라며 “반 시장적이라는 정부의 평가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는 가장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박정희 시대만도 못하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광택 국민대 교수는 “참여정부는 노동계의 절대적 지지속에 등장했지만, 그 기대를 져버리고 노동계와 단절했다”며 “좌파에서 보면 참여정부는 우파”라고 말했다.

▽교육 정책 포퓰리즘인가▽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세일 교수는 “현 정부의 포퓰리즘으로 교육 개혁이 실종했다”며 “고임금직을 어느 나라가 보다 많이 가져가는가는 그 나라의 교육시스템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부가 평준화를 너무 강조했다”며 “글로벌 경쟁력 속에서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는 NIS를 출범시켰고 교육개혁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고교 평준화를 문제시하는데 그건 박정희 정권의 산물이다. 고교 입시를 부활한다고 교육이 개선될지도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일관성 있나▽

이날 토론회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공격과 방어의 장이기도 했다.

박세일 교수는 “정부가 올봄까지만 해도 서울 과밀화로 국가경쟁력이 없다면서 25년간 45조원을 들여 인구 5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행정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서울에 주택 30만호가 부족하다며 신도를 개발하겠다고 한다”며 “정책이 일관성이 없고 즉흥적이다”고 비판했다.

이에 8.31부동산 정책 수립에 관여한 김수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30만호는 행정수도 건설을 감안한 숫자이고 멸실수도 포함됐다”며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들어가 있다. 반면 OECD 평균은 40%다. 부동산 자산의 양극화는 대를 이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한가▽

이런 와중에도 참석자들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타협’이 중요하다는 데 상당부분 공감했다. 양극화의 피해자인 노동계, 농민, 자영업자 등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 경제성장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 복지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최장집 교수는 “사회적 타협을 위해선 노조 조직률을 높여야 한다. 현재 우리 노조조직률은 11%로 대표성이 허약하다”며 “노조 공격이 경제문제에 해결이 되는지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세일 교수는 “노조뿐만 아니라 각계 대표들이 모인 회의체를 생각해야 한다”며 “일본에서 60년대 중반부터 노사정 대표가 매달 정례모임을 가져 신뢰를 쌓아 오일쇼크를 벗어난 것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황덕순 대통령 자문 차별시정위원회 비서관은 “대타협과 사회안전망 구축에 동의했듯 재원 마련에도 합의를 이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황민영 대통령자문 농어업ㆍ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박세일, 이정우, 최장집 교수도 이론적 대타협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초청 토론자 명단에 없던 고건 전 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참석해 3시간 동안 조용히 토론을 지켜본 뒤 자리를 떠 눈길을 끌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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