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김삼순과 김한솔 ‘그 시대의 차이’

  • 입력 2005년 9월 2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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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첫아이를 출산한 주부 한모(26·서울 송파구 잠실동) 씨는 아기의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가서 간호사가 부르는 다른 아기들의 이름을 들을 때면 ‘우리 아들 이름도 예쁘고 세련됐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한 씨의 아기 이름은 항렬에 따라 돌림자를 넣어 시아버지가 지어 주신 것. 한 씨 남편이 아들 3형제 중 막내인 데다 사촌형들까지 결혼해 아들들을 두어 항렬자를 넣은 좋은 이름을 다 쓰고 나니 한 씨 아들에게 남은 이름은 발음이 촌스럽고 어색한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시아버지의 작명권 오랜 관습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 짓는 일은 ‘집안의 대사(大事)’다. 그러나 서울 미아리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작명소’ 말고도 인터넷 작명소와 작명 서적이 넘쳐 나는 것을 보면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새로 한 식구가 된 개와 고양이용 유료 작명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아이 이름을 집안의 어른, 특히 시아버지가 짓는 것은 오랜 관습이지만 주부들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적지 않다.

한국인들은 이름 짓는 데 유난스러울 정도로 정성을 들인다. 그러나 최근 부부가 상의해 자녀 이름을 짓는 가정이 늘면서 작명소를 찾는 발길은 크게 줄었다. 규모가 크게 작아진 서울 시내 한 작명소 골목. 이훈구 기자

기성세대는 이름이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으로 사주팔자와 음양오행을 따지고 글자의 획수까지 균형을 맞춰 샅샅이 훑어낸 다음에야 아이 이름을 짓는다.

그렇지만 신세대 주부에게는 듣기 좋고 부르기 편한 이름이 최고다. 이들은 이름에 따라 운명이 정해진다는 생각에 비판적이다. 따라서 시부모가 부르기 이상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름을 작명소에서 받아 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MBC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화제가 되면서 개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요즘 아이들 이름도 ‘개명할 이름’이 될 뻔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주부 정모(31) 씨 친척들은 정씨 아들(5)만 보면 장난삼아 ‘금동이’라고 부르며 “동생을 낳으면 금은동 시리즈가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당초 정 씨 시아버지가 작명소에서 받아온 이름이 ‘금동’이었기 때문. 금동이란 이름을 보자마자 정씨 머리에 떠오른 것은 MBC드라마 ‘전원일기’의 김 회장댁 업둥이가 금동이였다.

아이가 놀림 받을 걸 생각하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정 씨는 남편과 함께 작명소에서 다른 이름을 지어 “금동이 말고도 사주팔자에 맞는 좋은 이름이 있다”고 시아버지를 설득해 간신히 ‘금동이’를 면하게 했다.

젊은 주부들이라고 무조건 시아버지가 이름 짓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보육교사인 맞벌이 주부 노모(32) 씨는 “친정아버지는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항렬자를 쓰지 않았는데 시아버지께서는 우리 딸 아이 이름을 항렬에 따라 짓는다고 하니까 존중받는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감각의 차이’는 걸림돌이었다.

노 씨는 “시아버지가 작명소에서 지어 온 이름 셋 중 ‘춘원’이라는 이름이 ‘사주팔자 풀이가 가장 좋다’고 고집하셔서 다른 이름으로 하느라 마음고생은 좀 했다”고 털어놓았다.

○ 한글이름 퍼지며 부부작명 늘어

시아버지의 ‘작명권’은 부부가 상의해 이름을 짓는 가정이 늘어나고 세련된 한글 이름도 많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많이 축소되긴 했다. 항렬이나 사주팔자를 따지지 않는 이도 많다.

그러나 아내보다는 남편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내 배로 낳은 아이’인데도 ‘시아버지 혹은 남편의 영역’인 것이다.

여성학자인 박혜경 씨는 “아이를 ‘가문의 후계자’로 보았던 과거와 달리 개인의 삶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이름 지을 때 항렬을 따지지 않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라며 “부부가 함께 아이 이름을 짓고 집안 어른들께 의견을 여쭈어 가족이 모두 기쁜 마음으로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경아 사외기자

:여자아이 이름 어떻게 변했나:

○ 조선시대: 순(順) 과 인(忍)이 강조된 사회상을 반영한 이름 →갑순, 순례, 복순, 덕순, 순옥 등

○ 일제강점기: 신체 특성이나 환경에 따른 단순한 이름 →복녀, 점순, 말숙, 후남

○ 1960년대: ‘자’자 돌림의 이름→미자, 영자, 말자, 춘자

○ 1970년대: 정숙미, 여성미를 강조→영숙, 희숙, 말숙, 정숙, 명희, 영희, 경희, 미희, 미영, 미숙, 미정, 정애, 은애, 성애

○ 1980년대: 독특한 개성, 특이성, 의미 중시→영아, 나영, 서영, 영지, 민희, 민혜, 숙현

○ 1990년대: 다양성, 개성화, 중성화, 국제화 추세→유미, 주리, 세리, 수지, 혜린, 다인

○ 2000년대: 한글 이름보다는 한자 이름을 많이 사용. 글자의 새로운 조합, 예쁘고 고급스러운 뉘앙스를 중시. 드라마 주인공 이름도 적극적으로 사용. 1990년대에 많았던 ‘지’자 사용은 한풀 꺾임→윤서, 은서, 하연

자료 : www.namekingd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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