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 스님의 빛’ 불교계 장례문화 바꾸나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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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 스님이 주지를 지낸 충남 예산군 수덕사의 스님들이 15일 법장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시신 장기 기증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불교 전통 장례 의식인 다비식. 사진 제공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법장 스님이 주지를 지낸 충남 예산군 수덕사의 스님들이 15일 법장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시신 장기 기증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불교 전통 장례 의식인 다비식. 사진 제공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11일 입적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法軀·시신)가 생전 스님의 서약대로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된 후 스님들과 불교 신자들이 장기 시신 기증 서약에 잇달아 동참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오랜 전통의 불교 장례의식인 다비(茶毘·화장) 의식이 사라질지 주목된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법안 스님과 문화부장 탁연 스님, 불교신문 사장 향적 스님 등은 13, 14일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생명나눔실천본부의 서약서 접수대에 들러 사후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 이어 다른 스님과 일반 신자 320여 명도 기증을 약속했다. 15일 오전 서울 조계사에서 영결식이 끝난 뒤 수덕사에서 법장 스님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의식을 치른 수덕사 스님들도 설정 수좌스님의 권유로 시신 기증을 서약했다.

법장 스님이 원력(願力)을 세워 1994년 창립한 생명실천나눔본부는 11년간 불교계를 중심으로 장기 시신 기증사업을 펼쳐 왔다. 현재 총 1만7000여 명이 장기 시신 기증을 서약했는데 이 중 스님은 1100명에 이른다. 조계종 스님 1만2000여 명 중 약 10%가 시신 기증에 서약한 셈이다. 이번 법장 스님의 법구 기증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스님과 불교신자가 서약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법장 스님의 법구 기증이 결정되기까지 ‘불경스럽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으나 장의위원회(위원장 현고 스님)와 문도회(門徒會)는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번처럼 다비식 없이 영결식이 치러지는 것은 종단장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법장 스님의 사형(師兄)인 설정 스님은 “개인통장 하나 없이 마지막 남은 법구마저도 남김없이 중생에게 회향(回向)하겠다는 법장 스님의 뜻을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스님도 “법장 스님은 입적하시면서 훌륭한 일을 해내 일거에 그 어떤 조사(祖師)보다도 빛을 발하셨다”고 칭송했다.

불교계는 시신 기증을 자신의 육신마저 이웃에 보시(布施)하는 행위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해석한다. 부처님 전생의 생활을 묘사한 설화집 ‘본생담(本生譚·자타카)’에 따르면 부처님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자신의 몸을 여러 번 공양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다비가 전통 장례로 자리 잡은 것은 부처님이 살았던 고대 인도의 일반적 장례 의식이 화장으로 치러졌기 때문이지,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중생을 위해 보시한다는 정신에 따른다면 장례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부처님도 승가는 장례에 신경 쓰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스님이 입적하면 티베트에서는 높은 산에 시신을 던져 두어 독수리나 까마귀가 뜯어먹게 하는 조장(鳥葬)을 치르며, 시신을 물에 던져 물고기가 먹게 하는 수장(水葬)을 하는 지역도 있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법장 스님은 불교계가 장기 시신 기증운동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며 “법장 스님의 이번 법구 기증은 스님들이 입적하고 난 뒤 사리를 찾고 부도탑을 사치스럽게 세우는 불교계의 풍조에 일침을 가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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