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스님 ‘나눔의 빛’ 남기다…생전 뜻 따라 시신기증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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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 대종사 장의위원회와 문도회가 1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스님의 법구를 경기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옮기기에 앞서 이운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장 대종사 장의위원회와 문도회가 1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스님의 법구를 경기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옮기기에 앞서 이운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새벽 입적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 스님의 법구(法軀·시신)가 경기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됐다.

법장 스님의 문도회는 12일 회의를 열어 스님의 법구를 기증하기로 결정하고 이날 오후 빈소가 있는 조계사에서 이운(移運) 의식을 가진 뒤 법구를 병원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15일 충남 예산군 수덕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다비식은 취소돼 종단장 최초로 다비식 없는 영결식을 하게 됐다.

법장 스님은 1994년 3월 생명나눔실천회(현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설립하고 장기 기증 서약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법장 스님이 심장수술 후 6일간 입원해 회복하던 중 갑자기 입적하는 바람에 장기 기증 시술 시기를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일산병원 측은 12일 오후 “시신을 검사한 결과 시간이 너무 지나 장기는 쓸 수 없고 뼈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장의위원회는 모든 조의금을 법장 스님이 평생 원력(願力)을 세운 생명나눔실천본부의 기금과 스님 노후복지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법장 스님과 함께 원담(圓潭·80·수덕사 방장) 큰스님에게서 불법을 배웠던 사형(師兄)인 전 종회의장 설정(雪靖) 스님은 “고인은 자기 주머니나 은행 계좌를 따로 만들지 않아 돈이 생기면 항상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좋아했다”며 “이번 입원 기간에도 각계에서 위문금 1000만 원이 들어오자 법전(法傳) 종정 예하께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종정께 보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연로한 원담 스님이 충격 받을 것을 우려해 제자인 법장 스님의 입적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법장 스님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추서하기로 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법장스님 영전에…“이제 수고의 짐을 내려놓으소서”▼

나는 종교 다원주의자는 아니다. 스스로를 보수적 성향이 강한 장로교 목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법장 스님을 형님이라 불렀고, 법장 스님은 나를 아우로 대해 주셨다. 나와 법장 스님의 종교는 다르지만, 세상에서 종교 간의 갈등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뜻은 같았다. 그래서 종교인은 이 사회에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도 같이 가졌다.

내가 법장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12월 19일 충남 예산군 수덕사에서였다. 평소 ‘말’보다는 ‘실행’이 따라야 되겠다는 뜻으로 봉사단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다종교 사회 속에서 이웃 종교들과 함께 봉사하겠다는 뜻을 지인에게 알렸더니 법장 스님을 찾아가 청을 드려 보라고 해서 수덕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솔직히 목사가 절을 찾아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또 청을 드렸는데 거절당하면 산에서 어떻게 내려오는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기우였다. 처음 그분을 뵌 인상은 ‘후덕한 분’이라는 것, 그래서 어떤 청이든 들어 주실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평화봉사단에 대해 설명한 후 부이사장 직을 수락해 주십사 청했더니, 뜻있는 일을 한다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하시면서 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리고 다도(茶道)에 따라 정성껏 손수 따라주시는 그 위엄 속에서 나는 도리어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주지 스님 거실이 아닌 어느 소박한 농가에서 아우를 대하는 형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후 각 종교 종단 수장 모임에서도 스스럼없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형님이라 불렀다.

지난해 서울시장의 장충체육관 발언이 시장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와전되어 불교와 기독교 간의 갈등이 심각한 대립으로 갈 때 법장 스님께서는 불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감수하시면서도 원만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셨다. 나는 이 일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본에서 개최된 ‘동북아 평화포럼’에 참석하고 돌아오다 법장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와 한동안 멍하니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법장 스님을 처음 뵙던 날 받은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라는 수필집을 꺼내 한장 한장 넘겨보면서 스님의 너그러운 미소가 겹쳐 눈물이 났다. 그리고 시공간을 떠나 그의 글 속에서, 내 손을 잡아주시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큰스님!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의 사역은 나그네인 제가 하겠으니 이제 그 수고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안식하소서.

백도웅 목사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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