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루함의 철학’…피할수 없는 삶의 중력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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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은 근대의 특권이다. 낭만주의 이전만 해도 지루함은 오직 귀족과 성직자만의 몫이었다. 18세기 프랑스 왕궁의 호사를 그린 칼 반 루의 ‘사냥 중의 휴식’은 지루함이 상류층의 풍요 속에서 잉태됐음을 보여 준다.
지루함은 근대의 특권이다. 낭만주의 이전만 해도 지루함은 오직 귀족과 성직자만의 몫이었다. 18세기 프랑스 왕궁의 호사를 그린 칼 반 루의 ‘사냥 중의 휴식’은 지루함이 상류층의 풍요 속에서 잉태됐음을 보여 준다.
◇지루함의 철학/라르스 스벤젠 지음·도복선 옮김/296쪽·1만900원·서해문집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음에 취해 있는 것 같고, 우리 의지는 게으른 발길에 차이는 텅 빈 양동이와도 같다….”(페르난두 페소아)

지루함, 그것은 마치 먼지와도 같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숨을 쉴 때마다 들이마시게 된다. 그것은 워낙 작아서 이 사이에 끼는 일도 없고, 이에 부딪혀 소리를 내는 일도 없다.

그러나 잠시만 멈추어 서 있어 보라. 얼굴이며 두 손이며 온몸이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이 재의 비와도 같은 걸 털어내기 위해서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지루함에는 본시 ‘밑바탕’이 없다. 스스로 지루한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지루함에 시달리는 일이 덜하다? 여성들은 제대로 일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니체)

신은 지루했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다? 아담은 혼자였기 때문에 지루했고, 그래서 이브가 만들어졌다?(키르케고르)

저자는 지루함의 의미와 역사, 그 교훈을 찾아 고금의 여러 문헌을 종횡무진 헤집는다. 철학 문학 심리학 신학 사회학 분야를 넘나드는가 하면 할리우드의 영화를 기웃거린다.

지루함과 우울함은 상실의 대상을 딱히 꼬집어 낼 수가 없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지루함에는 우울함이 갖는 심각함조차 없으니 너무 속되고 천박하다.

지루함은 근대의 특권이다.

낭만주의 이전만 해도 지루함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몫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고 상류층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물질의 풍요가 두루 퍼져나가면서 지루함도 일부의 독점상태에서 벗어났다.

현대에 이르러 지루함은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화 전반에 걸친 삶의 의미와 연관된다. 전통의 고삐에서 풀려난 근대의 ‘개인’은 쉴 새 없이 일탈(逸脫)을 통해 스스로의 의미를 찾고자 하나 일탈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오히려 더 가련해질 뿐이다. 우리는 그저 맥없이 지루함에 내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중력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지루함은 모든 악덕의 뿌리라고? 중세 신학자들의 주장은 지나친 것이지만 지루함이 악덕에 빌미를 주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나 위안은 있다. 지루함은 악덕의 근원이면서 또한 그 악덕들을 끝맺기도 하니, 악덕들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라던가.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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