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다양성’…‘다양성의 신화’ 무너진 위기의 미국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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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를 지배해 온 ‘다양성의 신화’는 9·11테러 이후 살벌해진 국가적 통합의 분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 제공 해바라기
미국 사회를 지배해 온 ‘다양성의 신화’는 9·11테러 이후 살벌해진 국가적 통합의 분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 제공 해바라기
◇다양성/피터 우드 지음·김진석 옮김/496쪽·2만2000원·해바라기

“올해는 너무 많은 진흙세례를 받아 모든 아카데미상 후보들이 흑인처럼 보인다!”

2002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진행을 맡은 우피 골드버그의 말처럼 ‘검은 별’들의 잔치였다. 남우주연상에 덴절 워싱턴, 여우주연상에 핼리 베리, 공로상에 시드니 포이티어….

아마도 저자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잔뜩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을까.

할리우드의 ‘검은 별’ 이야기는 미국 사회에 깊고도 넓게 뿌리내린 ‘다양성의 신화’, 그 성공담 가운데 지극히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모든 인종과 민족이 사회적 이익을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는 다양성의 원칙은 미국에서 건국이념에 버금가는 시대의 소명이 되었다. “다양성은 미국에서 새로운 종교로 등장했다!”

대학은 더 많은 소수 인종 학생을 입학시키고, 기업은 더 많은 소수 인종 근로자를 고용하며, 박물관에서는 더 많은 소수 민족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낸다. 다양성은 우리가 좀 더 관대해지고, 마음을 열고, 공정해지기를 요구한다고?

기업과 학교에서 소수 인종에게 베푸는 특권은 오히려 역차별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종교의 다양성은 주류 교회사회의 위축을 가져왔고 소수에 대한 특혜 때문에 기업은 지쳐 가고 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우리는 ‘운명이라는 한 벌의 옷’으로 엮여 있다”며 통합을 호소했지만 다양성 운동은 분명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을 완벽하게 짜인 한 벌의 옷으로 여기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느슨하게 풀린 실이 많기 때문이다.”

느슨하게 풀린 실은 미국이라는 옷감에 완벽하게 엮여 있지 않은 사람들, 즉 소외된 사람들이다. 미국인들은 한 세대가 지나도록 이들 실을 낱낱이 풀어헤치는 것에 몰두해 왔다.

저자는 묻는다. 왜 미국인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식인종에게서 구해 준 사실을 모른 체하는가. 커스터 장군이 수우족을 공격한 것은 생생히 기억하면서 수우족이 죄 없는 양민 700명을 학살한 사건은 왜 외면하는가.

미 보스턴대의 인류학 교수인 저자는 다양성이라는 개념의 탄생과 진화, 현재의 모습을 통해 그 오해와 편견의 역사를 탐구한다. 인류학 과학 종교의 고전들을 훑으며,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다양성의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파헤친다.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사이비 다양성’의 허구를 들춰냄으로써 진정한 다양성의 세계를 제시하고자 하나 아쉽게도 저자의 논점은 또 하나의 도그마로 흐르고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다양성이라는 개념의 일대기’라고 할 이 책에서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다양성 신화’의 장례(葬禮)를 치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2001년 9·11테러는 그 호기였다. 다양성에 대한 국가적인 존중은 몰락하는 듯했다. 다양성 운동 때문에 미국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취약해졌다는 생각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갔다.

그러나 다양성은 9·11테러 이후 살벌한 국가적 통합의 분위기에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다양성은 쓰라린 분노와 성마른 요구로 우리에게 더욱 새롭고 질긴 속박을 가할 것이다. 진리를 가장하는 다양성의 공약은 앞으로도 수많은 가장무도회를 연출할 것이다.” 저자의 우려 섞인 전망이다.

저자는 월트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며 미국인들이 인종과 계급의 정체성이라는 편협함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기원한다.

“나 자신을 부인해 볼까?/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도 괜찮아./나는 크고, 수많은 나를 담고 있으니까….”(‘나 자신의 노래’)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휘트먼의 시는 다양성을 공격하는 미국의 주류사회, 그 보수적 시각에 대해서도 똑같이 관용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 않은가. 원제 ‘Diversity’(2003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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