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24>슬픈열대-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입력 2005년 4월 29일 01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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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반대편에 떨어진 신세계인 남미에는 문명이 건설한 도시와 사라져가는 운명에 놓인 원주민들이 함께 있다.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탐험의 회상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이 지역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분석하면서 ‘문명’과 ‘미개’의 관계를 규명하고 그로부터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을 시도한다.

저자는 이 지구상에 가장 원시적인 따라서 가장 자연적인 상태의 삶을 살고 있는 네 개의 미개인 부족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심성과 사고방식, 사회조직과 생활양식, 종교와 의례, 예술과 상징 등을 섬세하게 재현하고 그들이 본질적으로는 문명인과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서구의 합리성을 넘어선 더 넓은 ‘의미의 범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자연과 원시 그리고 순수한 인간의 세계를 급격히 황폐화시키는 무서운 힘을 가진 서구의 탐욕이 아름다운 도시 속에 썩은 냄새를 풍기며 숨어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그는 서구의 ‘문명’과 비서구의 ‘미개’를 별개의 것으로 논하던 종래의 습관을 벗어나서 이 둘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하는 탁월한 시각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문명과 미개가 모두 서구인의 욕망이 발명한 상상의 실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는 ‘신세계’의 순수한 자연이란 허상에 불과하며 ‘미개’를 발명하고 정복하며 마침내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문명의 폭력과 욕망이 자행한 역사가 은폐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실은 서구인들이 자신을 발명하고 왜곡하며 타락시키는 현실이라는 통찰에서 오는 통렬한 아픔과 분노를 맛본다. 그의 슬픔은 순수한 인간이 급격히 멸종되어 간다는 사실과, 서구인 스스로가 상상으로 발명한 허구적인 자신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현실과, 뻔뻔스러운 문명과 내버려진 미개의 틈새에 서서 이를 증언해야 하는 인류학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동시에 간파하는 중층적인 슬픔인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문명과 야만을 하나의 체계 속에 놓고 끊임없이 양자를 오가며 심층적이고 넓은 안목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익숙한 자기의 세계로부터 낯선 ‘그들’의 세계 속에 들어가서 유일한 진리로서 굳게 믿고 있는 자기 문화의 껍질을 하나씩 벗어나가 마침내 저 심층 한가운데에 가려져 있는 ‘우리’를 발견하는 구도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의 인류학자가 추구하는 과학적 탐구의 긴 여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문명과 미개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도를 설정하고 사라지는 미개에 대한 싸구려 감상을 연출하는 통속적인 여행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서구가 축적한 정교한 지식의 면밀한 분석을 동반한 진지한 참회록이다. 결국 ‘그들’과 ‘나’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성찰로부터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지구 공동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가진 성숙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의 이러한 인식의 틀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선배와 동료들이 남긴 다른 세계에 대한 다양한 형식의 지적 모험의 기록들을 새롭게 읽을 수 있으며, 성숙한 눈으로 지식의 거대한 신세계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이 현대인의 저작이 고전이 되는 까닭은 그것이 지식생산의 역사적 과정을 규명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의 세상보기와 자기 발견의 시도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광억 서울대 교수·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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