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거장들]<3>생태시인 게리 스나이더

  • 입력 2005년 4월 24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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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이상화 교수
사진 제공 이상화 교수
간혹 전생(前生)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시인 게리 스나이더(75)가 그런 사람이다. 깊은 산중에서 수천 년을 살았던 나무였을까, 아니면 그 자신이 한 번 직접 만난 일이 있다는 굼뜨면서도 섬세한 회색곰이었을까. 많은 인간적 문제를 안고 있되 그것을 던져버리지 않고 껴안으려 했던 선승(禪僧)이었을까, 혹은 추운 지방을 찾아가는 철새였을까.

그의 글의 중심에 등장하는 인간 아닌 생명들, 숲을 이루는 나무들과 야생생물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깊은 관심과 뜨거운 사랑 때문에 나는 그의 전생을 인간 쪽보다는 인간 아닌 생명 쪽으로 상상하게 된다.

2001년 그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에서 남편 고은 시인의 단독 문학행사를 만들어 초청했을 때 우리를 철새 도래지로 데려가 하루 종일 함께 지냈다. 그곳은 자연보호지구여서 사람들이 밤에 머무를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스나이더는 그 몇 해 전 아내의 차로 와서 하룻밤을 그곳에서 지냈던 경험을 들려줬다. 해가 질 때 아내를 돌려보낸 뒤 담요와 망원경과 물과 샌드위치를 갖고 경비원의 눈을 피해 풀숲으로 숨어들어 철새들을 관찰하고,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아주 행복한 밤을 떨며 지새웠다고 눈웃음 가득히 회고해 준 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000년 9월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 이상화 교수의 집을 방문한 게리 스나이더(왼쪽)와 이 교수. 13세 때 태평양 연안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등정한 뒤 산을 즐겨 찾는 스나이더는 2000년 방한 때도 지리산과 운문산에 올랐다. 사진 제공 이상화 교수

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생태시를 쓰기 시작한, 우리 시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시인의 한 사람인 스나이더는 1960년대 앨런 긴즈버그 등과 더불어 비트문학을 개시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승려로서 10년의 치열한 수행 기간을 보내기도 했다. 1969년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이 ‘거북섬’이라고 부르는 북미로 귀환해 시에라네바다의 숲 속에 집을 지은 이래 젊은 시절의 명상과 시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는 그곳의 드넓은 공간을 넘나들면서 시 낭송을 하고 시를 일깨우는 일을 하는 한편,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 가서 생태계 보호운동과 생명사랑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미국이 큰 힘을 행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나뉘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비정치적 반체제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스나이더의 우주와 지구에 대한 경이로운 사유는 아주 미세하게 아름다운 것들, 아주 연약한 존재들, 덧없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지독한 연민을 그 근원으로 한다. 그의 시와 산문의 중심에는 우주와 그 안의 한 곳인 지구, 그 지구에 깃들여 사는 모든 생명에 대한 특별한 명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 그의 섬세한 가족 사랑과 바로 이웃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감동적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명상은 우리 일상의 세부에 대한 충실성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사는 산 아래의 작은 마을에는 구순 후반의 노모가 살고 계신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어김없이 어머니 댁을 찾아가 시장도 봐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건사해 드린다. 그는 또 그들 부부가 숲 속에서 정성껏 키웠고, 이제는 분가해 멀리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자주 찾아가고 함께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그 자신 간단치 않은 병을 몇 년째 앓고 있으면서도 10년째 힘든 투병생활을 하는 일본계 아내이자 그의 삶의 도반인 캐럴 씨를 헌신적으로 간병하고 있다. 캐럴 씨가 대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버클리에 나온 스나이더가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노을이 참 아름다워요’라고 말했다면서 소년처럼 미소 지었다. 깊은 산속에서 뭇 생명과 어울리며 가위 우주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때때로 이들 부부는 인간의 질병을 뛰어넘어 인간은 몸 없이도 살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스나이더는 워싱턴 주의 가족 농장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철 따라 숲에서 일하면서 일찍부터 자연과 친밀해졌다. 13세 때 북서태평양 연안의 눈 덮인 산봉우리에 사로잡혀 홀로 그 산꼭대기를 등반한 이래 세계 도처의 높은 산들을 무수히 오르며 심신을 단련했다. 2000년 세계문학 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행사가 끝난 후 운문산과 지리산에서 각각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그는 대산재단 초청으로 이번에 다시 한국을 찾으면서 한국의 산에 오르고 싶지만, 음식물을 호스로 공급받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쁜 아내를 오래 혼자 둘 순 없어 바로 돌아가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형제 시인으로 교류하는 고은은 그에 대해 “자연의 가장 먼 곳까지 닿는 강한 시력을 소장하고 있으며, 목소리는 동굴 속의 울림을 아직껏 보전하고 있는 상고시대 원시인들의 혈거적 성찰을 갖추고 있다”고 스나이더의 시적 성취를 평했다. 불교와 우주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모든 생명을 노래한 스나이더의 문학은 혼의 미학을 이룬다.

이상화 중앙대 교수·영문학

○스나이더는…

△193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

△1951년 오리건 주 리드대에서 문학과 인류학 전공

인디애나대를 거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동양학 전공

△1955년 요세미티 국립공원 도로 노동자를 시작으로 다양한 노동 체험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선불교를 접한 뒤 교토(京都) 임제종 대덕사에서 10년간 수행

인도 여행, 태평양에서 유조선 노동 체험

△1959년 첫 시집 ‘잡석(雜石·Riprap)’ 발표

△1969년 미국으로 귀국, 시에라네바다에 정착

△1975년 시집 ‘거북섬(Turtle Island)’으로 퓰리처상 수상

△1985년∼현재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영문학 교수

△1997년 시집 ‘산하무한(山河無限·Mountains and Rivers without End)’으로 볼링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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