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바만 고바디 감독의 ‘거북이도 난다’

  • 입력 2005년 4월 21일 15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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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바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건 지독한 경험이다. 그의 영화는 마치 망치나 송곳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 가슴 한구석을 깊이 찔린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고바디 감독의 영화 속 아이들, 그러니까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터키 접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늘 매설된 지뢰와 불발탄 때문에 순식간에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일을 일상처럼 겪으며 살아간다. 교육과 육아복지란 단어는 이들에게 사라진지 오래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지나치게 일찍 배운 아이들은 좀처럼 희망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희망 없는 삶이라는 것, 아니 애초에 우리들 삶에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과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정신적 외상은 쉽게 치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지역의 아이들이 이렇게 필요 이상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건 바로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전쟁 때문이다. 그래서 고바디 감독은 묻는다.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고바디 감독의 새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이라크 북부 아르빌 근방, 곧 터키 국경 인접 지역까지 밀려나 살아가는 쿠르드 난민촌 아이들의 삶을 그린다. 고바디 영화의 키워드는 늘 ‘쿠르드족’인데 그건 그의 민족적 정체성이자 벗어날 수 없는 영화적 정체성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수백 년 동안 나라와 영토 없이 이란과 이라크, 터키를 떠돌며 살아가는 민족이다. 3국 모두에서 억압과 핍박을 당해 온 것은 물론이고 3국 간 분쟁과 갈등에 늘 총알받이처럼 이용당해 왔다. 특히 개와 고양이 같은 사이인 이란-이라크 간의 오랜 분쟁에서 1980년대에는 이란 편에 섰다가 후세인 군대에 의해 수십만 명이 학살당하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고바디는 쿠르드계 이란 감독으로서 자기 민족의 역사적 아픔, 무엇보다 그 아픔이 지금의 아이들의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자행되고 있는가를 그리려 한다. 그가 경험했던, 또 숱하게 전해 들었던 비극의 에피소드들은 영화작가인 그에겐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결코 벗어던지기 어려운 짐과 같았을 것이다. 예컨대 전작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 그런 비극의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이 영화에서 고바디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말들조차 술을 먹여야만 넘어갈 수 있다는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 산악지대에서 밀수로 생계를 꾸려가는 한 소년가장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거북이도 난다’에서 난민촌을 돌아다니며 방송위성의 수신용 안테나를 달아주는 일을 하는 바람에 ‘위성’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소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성’은 아이답지 않은 수완으로 캠프의 또래 아이들에겐 일종의 지도자로 대접받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땅에 묻힌 지뢰를 내다파는 위험천만한 일일 뿐이다. 어느 날 ‘위성’은 수용소에 새로 들어 온 아그린이라는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아그린은 소년의 그런 마음을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아그린이 ‘위성’의 마음을 거부하는 데는 삶보다는 늘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그린은 이라크 군인들에게 부모를 잃었으며 그 과정에서 집단 강간을 당해 아이까지 낳은 상태다. 같이 다니는 오빠는 앞일을 내다보는 투시력을 갖춘 영민하고 지혜로운 소년이지만 지뢰 때문에 두 팔을 잃은 불구의 몸이다. 아그린은 늘 ‘원수 같은’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죽기를 꿈꾼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이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대목은 아그린이 ‘위성’에게 3m짜리 끈을 구하는 첫 장면이다. 처음에 이 끈은 몽유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밤사이 돌아다니지 않게 발을 묶기 위해 쓰인다. 잘못하다가 아이가 지뢰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이 끈은 아이를 버리고 나서 따라오지 못하게 묶어 두기 위해서 쓰이고, 그리고 또 나중에는 더 잔혹한 비극의 상황을 위해 쓰이게 된다. 계곡의 새벽 안개 속에 아이를 버려두고 차마 돌아올 듯 돌아올 듯 끝내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는 소녀 아그린의 모습은 너무나 참혹해서 감히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이라는 얘기조차 하기 힘들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내, 영화 속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절제하는 삶보다는 오로지 욕망하는 삶만을 배워 온 우리들에게 고바디 감독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에도 눈길을 돌리라며 회초리를 휘두른다. 때론 매도 맞아야 하는 법이다. 만국의 어린이들에게 평화와 평안을 주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전쟁 없는 삶을 위하여.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동의대 영화과 교수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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