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서거]교황 떠나던 순간 “나는 행복, 그대들도 행복하세요”

  • 입력 2005년 4월 3일 18시 40분


코멘트
추모미사 참가한 추기경들  “이제는 주님의 곁으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추모미사에 참가한 추기경들이 손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차기 교황은 80세 이하의 추기경들로 구성된 교황 선거회에서 선출된다. 바티칸시티=EPA 본사특약
추모미사 참가한 추기경들 “이제는 주님의 곁으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추모미사에 참가한 추기경들이 손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차기 교황은 80세 이하의 추기경들로 구성된 교황 선거회에서 선출된다. 바티칸시티=EPA 본사특약
“교황 중의 교황.”(영국 더 타임스)

“죽음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 준 위대한 스승.”(독일 디 벨트)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는 슬픔에 빠져들었다. 재위 기간 26년 동안 인류의 평화와 화해를 전도하는 데 헌신했던 만큼 그에 대한 세계인들의 애정과 존경은 각별했다.

10만여 명이 운집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최근 지진이 휩쓸고 간 인도네시아 니아스 섬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에 대해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요.” 교황은 서거 직전 인류의 행복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서거가 임박한 교황은 비서에게 이 같은 ‘유언성’ 메시지를 구술하고, ‘아멘’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숨을 거뒀다. 교황이 숨을 거두면서 응시한 곳은 성 베드로 광장을 향한 창문 쪽. 그 너머에 있는 신자들을 향한 듯 “기도와 함께 창문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고 가톨릭TV채널 ‘바티칸 서비스뉴스’의 야렉 시엘레키 사장 신부는 전했다.

○…며칠 동안 다소 어수선했던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은 교황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일순간 정적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잔잔히 박수 소리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기도가 이어졌다. 이는 고인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이탈리아식 추모 방식.

○…전 세계의 지도자들도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세계는 인간 자유의 옹호자를 잃었다”며 교황을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표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개인적으론 교황과의 만남이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교황의 조국인 폴란드에서는 서거 소식이 긴급뉴스로 전해진 지 20분 뒤 전국 각지의 교회에서 종이 울리고 관청의 확성기를 통해 사이렌이 울렸다. 바르샤바 대통령궁에는 조기가 내걸렸으며,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은 6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중동지역에서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 온 교황을 애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암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의 대변인 히샴 유수프는 “오늘은 참으로 애통한 날”이라고 말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LO) 측도 교황의 서거를 “모든 인류의 큰 슬픔”이라고 성명서를 냈다.

○…전 세계 가톨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남미 국가들은 교황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즉각 정규 TV방송을 중단하고 추모방송에 돌입했으며 최장 1주일 정도를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최근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인도네시아 니아스 섬에서도 가톨릭 신자 150여 명이 산타마리아 성당에 모여 추모미사를 올렸다.

○…교황청은 e메일과 문자메시지(SMS)를 통해 교황 서거 소식을 세계 주요 언론사에 일제히 통보했다. 전문가들은 교황청이 전자장치를 이용해 서거 소식을 전한 것은 평소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효과적으로 전해 왔던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력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종교마다 다른 ‘죽음’용어▼

한국 천주교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逝去)를 ‘선종(善終)’으로 표현하기로 공식 결정하면서 죽음에 관한 종교별 용어와 그 뜻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3일 일반적으로 큰 인물의 타계 시 쓰는 ‘서거’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선종’을 쓰기로 확정했다. 선종은 임종할 때 성사(聖事)를 받아 대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을 일컫는다. ‘착하게 살다 복되게 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다.

그러나 본보는 ‘사거(死去)’의 높임말로 유명 인사 타계 시 써 온 ‘서거’라는 표현을 요한 바오로 2세에게도 사용하기로 했다.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의 ‘소천(召天)’이란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소천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로 ‘별세(別世)’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쓰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이르는 용어로 ‘열반(涅槃)’이나 ‘입적(入寂)’을 쓴다. 두 말은 원래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의미로 석가모니와 고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족종교인 천도교에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교황 자작시▼

다정한 사람

사랑이 그대 위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진정한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즐거운 기분은

한 조각의 작은 열광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당신은 허무를 생각합니까?

마음과 마음 사이에는

언제나 벌어진 틈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이로 서서히 들어가야 합니다

눈이 색깔을 바라보고

귀가 소리에 익숙할 때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내면의 공간으로 깊이 들어가십시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회피하는 마음, 모진 마음을

모두 떨치도록 하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집 ‘빛을 향한 길목에서’(1995년 문학마을 발간) 중에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