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인재 포석의 명인’… 줄서기도 능력

  • 입력 2005년 2월 18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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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포석의 명인/이기홍 외 지음/293쪽· 9800원· 동아일보사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인사 발표가 날 때면 선택되지 못한 직장인들은 이렇게 자신을 불운한 천재라고 한탄한다. 아니면 술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누구는 줄을 잘 서서, 누구는 아부를 잘 해서 승진했다고 험담을 늘어놓기 일쑤다.

인사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조직생활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방어 기제의 하나다. 특히 한국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이 자신보다 잘났다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일 수도 있다. 또 발탁되는 사람은 소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수이기 마련이니 다수의 편에 서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는 유독 상호의존성이 높은 사회다. 그만큼 혈연, 지연, 학연 등 각종 인맥이 인사에 작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 탓만 하기에는 뭔가 미진하다. 막연히 손가락질하기 전에 한번 인사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03년 4월부터 12월까지 동아일보에 매주 두 차례 연재됐던 ‘인간 포석-인사의 세계’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이 책은 30여 명의 기자가 동원된 이 시리즈를 가다듬어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1부 ‘나의 인재감별법’은 인사를 직접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인사의 귀재라고 손꼽힐 만한 11명을 선정해 그들의 인사기법에 귀를 기울였다.

천재경영론을 앞세워 대한민국 최고 조직으로 불리는 삼성그룹을 이끄는 이건희 회장, 대한민국 철강 신화를 이룩한 박태준 전 포철그룹 회장, 경제관료의 대부로 손꼽히는 남덕우 전 부총리,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대표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매김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100편의 영화를 만들며 40여 년간 은막의 스타들을 조율해 온 임권택 감독, 프로야구 5개 팀 감독을 거친 풍운아 김성근 감독 등이 그들이다.

2부 ‘사람과 자리’는 대기업 벤처업계 금융계 등 기업, 검찰 경찰 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 그리고 정부 부처별 관료조직별로 어떤 자리가 요직이고 인사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또 조직별 인사 백태(百態)와 함께 조직의 투명성과 윤리성이 강조되면서 변화하는 인재상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직장인들이 ‘연줄’이라거나 ‘아부’로 비치는 것이 인사권자의 입장에서는 상당부분 객관적 능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서슴없이 “줄을 잘 섰기 때문에 출세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업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왔다는 뜻이다. 이석재 PSI컨설팅 진단평가연구소장은 “CEO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재능 중에서 거기에 부응하는 카드를 내밀 줄 아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알아주기 전에 먼저 상대의 마음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책은 또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종 조직별 인사의 특징과 핵심요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조직에 몸담을 사람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미완성이다. 인사권자와 인사의 특징을 다루긴 했지만 정작 인사 대상인 당신의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독자가 될 당신의 몫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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