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재현]‘光化門’ 디지털 복원이 해결책 될까?

  • 입력 2005년 2월 1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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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열린 문화재청 기자간담회에서는 한 편의 마술쇼가 펼쳐졌다. 1916년경 광화문을 촬영한 유리 원판 사진의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현판 부분의 글씨를 디지털복원기술을 이용해 희미하게 되살려낸 사진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디지털복원기술로 현판 글씨를 확인해낸 것은 일본과 중국에도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한국 문화재 복원기술의 개가라 해야 할 것입니다.”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의 목소리에서는 흥분이 배어나왔다. ‘미션 임파서블’ 같은 영화에서나 보던 첨단기술이 우리 문화재 복원에 적용되고, 사라진 글씨의 원형을 찾아낸 것은 분명 감탄할 일이다. 당초 조선 정조(正祖)의 어필(御筆)을 집자(集字)한 현판 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은 유 청장 개인에게도 적잖이 반가운 돌파구다. 유 청장은 “문화재 복원의 원칙은 원상복구”라며 정조 어필보다 디지털복원에 대한 기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디지털복원기술을 통해 불타 버린 현판 글씨를 되살려내 광화문에 거는 것은 정치적 논란과 별도의 미학적 논란을 제기한다.

예술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1934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논문에서 이미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 범람하는 현대예술의 문제점을 ‘아우라(Aura)의 붕괴’라고 지적했다. 아우라는 예술작품 원본이 시공간적으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데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분위기를 말한다. 무한복제의 디지털시대에 아우라의 문제는 더욱 중요한 미학적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는 과연 디지털기술로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를 진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그 글씨를 보면서 진정한 예술적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 그 글씨는 이발소에 걸려 있는 세계명화의 복제품들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유 청장은 학자시절부터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목조가 아니라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문화유산을 복원한 것을 비판해 왔다. 시멘트와 콘크리트는 당시의 기술적 진보를 상징했다. 디지털은 오늘날의 기술적 진보를 상징한다. 그 디지털기술로 복원한 현판 글씨를 내건다면 콘크리트로 광화문 문루를 복원한 박정희식 미학과 얼마만큼 차별화되는 것일까.

얽힌 실타래는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쉽게 풀리지 않는 법이다.

권재현 문화부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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