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책 읽는 국민이라야 산다

  • 입력 2005년 1월 18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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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산다. 생각해야 산다. 창의적이어야 산다.

도발적인 주장으로 들리는가. 하지만 별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주장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다.

지난해 우울한 뉴스 가운데 하나는 교보문고의 매출액이 창업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는 것. 출판 불황을 상징하는 소식이었다. 그나마 인기 있는 책은 참고서, 처세술 등 실용서적이고 격조 높은 이론서나 고전은 서가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단다.

독서 인구 감소, 실용서적 득세 흐름은 선진국에서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곳 엘리트층의 독서열은 여전히 뜨겁다. 읽지 않고는 품격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명문대 지망생들은 고전 원전을 적어도 열 몇 권은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학지원서의 자기소개서에서 얕은 사고력(思考力)이 금세 들통 난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독서장려책이 있다. 책벌레 학생에겐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주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도 겉핥기식 독서만 한 학생은 대학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가 어렵다.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같은 고전을 탐독하는 고교생도 흔하다. 어른들은 가을에 발표되는 공쿠르 문학상 수상작쯤은 읽어야 저녁 식사 대화에서 입을 열 수 있다.

▼강대국의 힘 ‘고전읽기’▼

미국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흔히 군사력, 경제력이 그 원천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지식의 힘이다. 미국은 20세기 이후 순수과학, 실용과학 할 것 없이 거의 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지식체계를 구축했다. 여러 나라 대학원에서 쓰이는 교재 대부분과 명성 높은 학술지 대다수가 미국산이다. 미국 대학을 방문해 보라. 치열하게 연구하는 교수들의 진지한 자세에서 미국의 ‘슈퍼 파워’를 느낄 수 있으리라. 노벨상에 근접하는 1급 학자 가운데 강의와 연구에 주 100시간을 투입하는 교수들이 수두룩하다 하니 미국의 힘이 어디 ‘람보의 팔뚝’에서만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저력도 만만찮다.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철학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사르트르 사후에도 데리다, 푸코, 라캉, 들뢰즈 등 석학들이 화두를 선점해 가고 있다. 프랑스가 독일과 손을 잡고 유럽 통합이라는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이룬 바탕엔 이런 지력(知力)이 있었으리라.

일본인의 성실한 독서습관도 무시할 수 없다. 적잖은 승객들이 문고판 책을 읽는 지하철 내부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주요 신문의 1면 광고는 서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만으로도 독서대국임이 짐작된다.

한국은 어떤가. 초중고교생 시절엔 ‘객관식 문제 도사’가 되는 교육을 받는다. 독서의 중요성은 구호에만 그친다. 대학에서도 전공과목은 젖혀 두고 취직시험용 객관식 문제에 매달린다. 진득하게 눌러앉아 두툼한 고전을 읽는 학생은 극소수다. 한국의 창의적 지식기반은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수험서만 펼쳐든 아이들▼

한 가지 희소식이 눈에 띈다. 이번 대학입시 논술 문제를 보니 깊은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족집게 과외로 하루아침에 익힐 수 없는 것이다. 꾸준히 폭넓게 읽고, 깊이 생각하고,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토론이란 미명 아래 말로만 떠들어서 될 게 아니라 글로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쓰기 연습을 해야 한다. 고전 읽기뿐 아니라 세상을 잘 이해하려면 ‘현실의 거울’인 신문을 정독해야 한다.

출판계 여러분들, 너무 상심 마시고 청소년용 양서(良書)를 기획하시길…. 학부모님들, 자녀의 밝은 장래를 위해 좋은 책 많이 사 주시고 가급적 자녀와 함께 독서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TV를 끄면 더욱 좋고….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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